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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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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레이 May 09. 2018

손으로 명상하다.

그림으로 얻는 것_





어릴 적 놀이 삼아 연습장에 끄적끄적 종이인형이나 만화 주인공을 그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주는 희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빈 종이를 마주하며 머릿속은 이미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고

시작도 하기 전에 성급한 성취감으로 마음이 두근거렸죠.


대부분의 경우, 기대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곧 실망하게 되고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지 않는 핑계가 되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손을 쓰지 않다가 문득 그림을 시작하게 되고, 또 실망하게 되면 곧 그만두고...

하는 과정들이 몇 차례나 반복되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가슴 뛰게 그리고 싶으면서, 막상 그리게 되면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과 당장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함께 느끼는 것일까?

생계를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작업도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그림인데.


아마도 결과물에 대한 높은 기대가 저를 그 괴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엇도 개의치 않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그리는 것", 

그 자세를 잃지 않았을 때 작업의 과정과 결과물이 저에게 온전한 행복감과 달콤한 괴로움을 준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Pray for you_ 염원 (펜화 / 420mm X 594mm)


이 그림은 2014년에 테크니컬 펜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열정은 큰데 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을 때, 오로지 성실하게 선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그려나갔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잘 그린 그림도 아니고 어색한 부분도 많지만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그때의 제가 떠올라 가끔 꺼내보곤 합니다.



 





Pray for you_ 염원 (펜화/ 부분컷)




그러고 보면 생각이라는 것, 자신에게 깊이 몰두하는 것이란 반드시 머리로만 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손끝으로 만지고 움직이며 나의 행위를 쌓아가는 것들이 하나하나 생각의 과정이라는 것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느낀다고 하면... 너무 과장이 심할까요?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요가나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 몸의 기운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정신적인 수련을 해나간다는 논리를 저는 "손의 명상"으로 약간이나마 체험하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유, 해야만 하는 이유를 느끼고 어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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