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병원 일지 4

운수 좋은 날

by 고작

며칠 전, 아들이 학교 끝나고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해서 햄버거를 시켜주고

남편한테 혼났다.

"애가 (아파트 입구) 문 여는 것도 모르는데.

인터폰에 손 닿지도 않을 걸?"


아차차!

갑자기 초조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인터폰 사용법을 알려주니

다행히 인터폰에 손도 닿는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모르는 사이에 훌쩍 자랐구나!

까치발을 들고 가제트 팔처럼 쭈욱 뻗었을 아들을 상상하니 뭉클한 마음까지 들었다.


잠시 후, 아들에게 온 문자

[엄마 입맛이 없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사연인 즉, 아침에 학교에 가다가 개똥을 밟았는데
그걸 본 친구들이 놀리고 소문을 냈다고 했다.

"많이 밟지도 않았는데에! 속상했어."

그게 자꾸 생각이 나서 마음이 힘들다고...


옆에 있으면

안아주고 별일 아니라고 웃어넘겼을 텐데.

멀리 있으니까...

(지방 촬영 가있을 때보다 더 속이 탔다)

어떻게든 달래주고 싶어서 뻥을 좀 쳤다.
"그거 알아? 개똥 밟으면 운이 좋대!

우리 아들한테 행운이 오려나?"


효과는 대단했다!

아들은 바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진짜 그런가 봐! 오늘 피구도 이겼고?"

(이럴 때는 진짜. 단순한 아들 키우는 게 감사)

아들의 신난 마음에 불을 더 지폈다.

"어쩐지~ 오늘 병원에서 드디어 죽이 나왔거든! 금식하다가 배고파서 쓰러질 뻔했는데.

갑자기 죽이 나와서 행운이다~ 했거든?

아들이 개똥 밟아서 그런가 봐~ 고마워!"


히히히힉^^ 아들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웃는다.

아직 뻥이 통해서 다행이다.

그런데 엄마는 말이다,

개똥 묻은 신발이 자꾸 떠올라 심란하네......

여보? 내 목소리 들리니? 신발 빨았니???


원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려고 했다.


그날 회진 때,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에서

'운수 좋은 날'이 이어졌다.

"지금 아이는 누구랑 있어요?"


아마 선생님을 처음 뵀을 때

아들 때문에 입원은 못 한다고 거절했던 게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그러면서 걱정되면 외출증을 끊어줄 수 있고

내일 초음파 검사 결과만 좋으면

퇴원시켜 줄 테니 외래에서 만나자고.


대박!! '퇴원'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다음 날, 초음파 검사를 위해 또 금식을 시작했다. 배는 고파도 어느 때보다 설레서 잠 못 드는 밤이었다.


이틀 후, 드디어 퇴원했다!!!

기쁜 마음으로 아들을 만났는데...

아들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서 졸리다고 했다.

신생아 때처럼 품에 안고 달콤한 낮잠을 잤다.

저녁에 일어났는데 아들은 배가 아파서 밥도 못 먹고, 구토를 하고, 새벽에도 잠을 계속 설치더니 자다 깨서 토를 또 했다.

"엄마 살려줘......"

그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지는 밤을 보냈다.


정말 감사하게도 늘 건강했던 아들이라

아픈 모습에 내 장이 다시 뒤틀리듯 아팠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왜 아픈지 알 거 같아.
'엄마랑 붙어 있고 싶은 병'
오늘 엄마랑 꼼꼼하게 붙어 있을래!


갑자기 퇴원해서 운수가 좋더라니......

아들이 아파서 다시 병원에 와있다.

아들은 수액을 맞는 동안에도 계속 묻는다.

"엄마 내 옆에 있을 거지?"

"그럼~!"


오늘 내가 네 곁에 있어줄 수 있어서
최고로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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