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생각해 보는 시간
그림책 <내가 모은 마지막 순간들>
- 마이야 후르메 글. 그림 / 정보람 옮김
입원하기 전 날, 그림책 모임에서 읽은 책이다.
처음에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슬프게만 느껴져서
섣불리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흔히 떠올리는 생의 마지막 이야기만이 아니다.
'마지막'에 여러 가지 의미를 깨닫게 되는 책.
다양한 '마지막'에 대해 고민해 본 계기였다.
예를 들면
마지막 짝꿍, 마지막 연애, 마지막 주자로 뛰었던 계주 시절, 피구에서 마지막 선수로 남았을 때, 마지막까지 믿었던 산타할아버지의 추억이라던가...
유쾌한 마지막 순간들이 떠올라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어쩌면 어제 그림책 모임이 마지막이 되려나? 초진 때 '중환자실'과 '난치병'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다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그림책에서 소개한 수많은 '마지막'을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 다양한 마지막 순간들
마지막 기회
늦은 마지막
이른 마지막
마지막이 아니었던 마지막
아쉬운 마지막
외로운 마지막
씁쓸한 마지막
함께하는 마지막
이어서 나에게 인상 깊은 마지막 순간들을 기록한다.
> 처음 맞이하는 마지막
- 출산. 인생 처음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 아마도?!!!
> 기다렸던 마지막
나보다 긍정적인 남편은 '마지막'을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했다. 애정하는 만화책의 완결 편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마지막이 꼭 나쁜 것도 아니더라.
> 긴장되는 마지막
- 5월에 봤던 면접. 오랜만에 보는 면접이라 잠을 거의 못 자고 갔다. 수십 번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바로 면접 아닌가? 처음 본 사람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상황. 그날은 면접을 무려 1시간이나 봤다. (결과는 좋았으나 다른 선택을 했지만) 이제 연차가 쌓여 면접관 역할도 많이 하는데. 사실 면접관도 엄청 긴장되는 자리다. 이번에는 작가를 잘 뽑아야 할 텐데. 1년, 아니 6개월만 버텨줄 작가 찾기가 고난도 미션이다. (*참고로 '작가 면접기'는 브런치북 <나의 일박 일지> 에피소드에 기록할 예정)
> 마지막이라도 괜찮아
- 작년부터 쓰고 있는 뮤지컬 대본을 쓰면 쓸수록 혼자 되새기는 말. 물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데. 방송에 비하면 굉장히 막막하다. 보통 신규 프로그램 기획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6개월을 넘기지 않고, 매주 급하게 준비해도 정확한 날짜에 방송이 되는 (놀라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닌) 초스피드 한 시스템으로 18년을 일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창작뮤지컬은 무대에 올리기까지 최소 5년이나 걸릴 거라고 했다. 그것도 빠른 거라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게 마지막이어도 괜찮아!' 좋아하는 뮤지컬 대본을 써본 것만으로도 추억이고 작가로서 큰 공부를 했으니까.
>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 이미 전송된 메일? 특히 공모전이나 아주 중요한 기획안 전달 후... 재차 [수신 확인]을 누르는 건 나뿐만은 아닐 터. 가끔 후배가 쓴 대본을 전달할 때 파일명이 [최종으로 가는 길.hwp] 면 귀여워서 풉 웃다가도 다시 선배 포스로 "장난하냐? 최종. 완본 버전으로 보내!"라고 했는데. 나 역시 원고를 전달할 때마다 나를 의심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최선입니까?
> 멀어지는 마지막
- 12월 6일 토요일 저녁 7시,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1층 A구역 14열 옆자리 관객이 떠올렸다. 보통 혼자 공연 보러 가서 조용히 보는 편인데. 그날은 본인을 '20대 초'라고 소개한 귀여운 소녀가 먼저 "옆자리시구나." 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녀와 대화하면서 20년 전, 뮤지컬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던 '초심'을 되새겼다. 공연이 끝난 후 떡볶이라도 사주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는데. 뮤지컬에 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원작 책 사러 가야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뛰어갔다. 그렇게 귀인이 멀어졌다. 아마도 우리의 만남은 마지막이겠지...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꼭 댓글 달아주세요!)
> 서두르지 않는 마지막
- 여덟 살 아들과 수면 분리. 보통 초등학생 입학 전에 수면 분리를 많이 하길래 나도 시도는 해봤다. 그날 밤 아들은 혼자 꿀잠을 잤는데 결과적으로 나 때문에 실패했다. 처음 떨어져 자던 날, 아들을 낳았던 첫날밤이 떠올랐다. 뱃속에서 놀던 대왕꿈틀이가 사라지니 너무 허전해서. 아기는 나를 찾지 않고 신생아실에서 잘 자고 있을 텐데. 그날 밤 마치 아기가 없어진 것만 같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품 안의 자식'은 가능하다면 계속 미루고 싶은 것.
> 버려진 마지막
- 아껴먹으려고 남겨둔 야채호빵 2개가 유통기한이 지난 바람에... 푸른 멍이 들었더라. 미안하다!
> 마지막의 마지막
할머니와 헤어진 마지막 날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계셨는데.
내가 할머니를 보러 갔던 날,
케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할머니 신발이 또 없어졌어. 어디다 숨기는 건지, 버리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할머니 신발 하나 사와. 그런 말도 있잖아. 좋은 신은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그 길로 근처 신발가게에서 가장 예쁘고 귀엽고 발 편한 신발을 샀다. 할머니가 제정신이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고운 신이었다. 신발 안쪽에 이름을 적어서 할머니에게 신겨주며 "이거 할머니 이름이잖아. 기억하지? 나는 기억 못 해도 할머니 이름은 알아야지! 이제 신발 잃어버리지 말고 맨발로 다니지 말고..."
그 신발을 신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는데...
이틀 후 할머니는 마지막 인사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새 신을 신고, 좋은 곳으로 간 거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쩐지 나 때문에. 내가 사준 신발 때문에. 할머니가 그 길로 급하게 떠난 것만 같아서... 오랫동안 괴로웠다. 지금도 할머니 신발과 비슷한 신을 볼 때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다시 할머니를 만날 때까지 지울 수 없는 '마지막' 한 장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