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턴을 기다리기
어릴때부터 다이어리에 매번 써놓던 글귀가 있다.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로 열자.”
내 삶의 방향성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믿어주는 것. 그게 전부다. 내가 언젠가 열어둔 가능성은 언젠가는 꼭 가능케됐다.
최근 이직을 하면서 스무 살부터 10년 넘게 꿈꾸며 바래온 일, 여행하며 기록하는 일과 가장 가까운 일을 하게 됐다.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라니 제법 주인공 같다.
주인공이 된 기쁨도 잠시, 곧장 들었던 생각은 와 신난다! 근데 그다음은? 다음 단계는 뭐지?
계단식으로 성장한다더니, 나는 한 계단오르는데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네. 어쩌면 그다음은 단계는 10년, 아니 20년이 걸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서 다음 단계를 찾는 게 아니라, 만족하기에 다음 단계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문득 내가 오래전 굴린 주사위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무인도에 빠져 몇 턴 쉬어가야 할 때면 오히려 좋아, 실제로 한 달이고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 주사위를 힘차게 굴렸다.
매 순간 몰입하는 플레이어지만, 매 순간 기쁘지는 못했다. 문득문득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종종 쓸쓸하고 때때로 울컥하고 자주 불안함을 느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가. 사연없는 사람은 없지. 손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질 때면 주사위를 손에 꼭 쥐고 놓지를 못했다. 심지어 이번 무인도행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몇 턴을 쉬어야 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던 찰나 하늘에서 주사위가 굴러떨어졌다.
”한 칸 이동하세요.“
이번에 주사위를 굴린 건 내가 아니라, 오래전의 나. 꿈꾸던 나의 턴이 돌아온 것이다. 딱 한 칸, 이번에 움직인 한 칸이, 나를 무인도에서 꺼내 더욱 몰입하는 플레이어로, 기쁘게 참여하는 플레이어로 만들어줬다.
자, 이제 신나게 주사위를 굴려볼까?
지난날 열어둔 가능성을 가능한 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더욱 신뢰하게 됐고, 더 응원하고 싶어졌다. 언젠가 나의 턴이 돌아왔을 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될 거야. 그리고 지금의 내게 아주아주 고마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