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전시하기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봐야지"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내년이면 사진을 시작한 지 10년째가 된다.
사진 하며 가장 두려웠던 건,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실력이 정체되는 것이었다.
문턱이 낮은 일이라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뛰어들 수 있는 일이다.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아마추어이든 프로든 카메라를 든 그 순간은 모두 사진작가라고 볼 수 있다. 거대한 우주가 그리는 선에 점을 찍는 일이다. 저마다의 고유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시선과 삶을 기록하는 일에 비교는 의미가 없다.
내가 두려웠던 건 '비교' 때문인데 언제쯤이었지, 몇 년 전 비교하기를 그만뒀다. 비교에서 자유로워지자 두려울 게 없어졌다.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한데 그 기준이 타인에게 가있으면 괴로워지는 것 같다. (물론 나 자신과의 싸움이 괴롭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화해의 여지가 많음)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타인에게 향하는 에너지를 내게 집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누군가의 오랜 시간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물을,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얕은 마음으로 쉽게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 스스로 경계하게 됐다.
그래서 작품을 볼 때는 전시를 관람하는 게 좋다. 충분히 서사를 인지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채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소비하고, 소비되는 입장에서 적어도 나는 창작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창작자이고 싶다.
사진을 하며 늘 '나의 색'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상업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지만 추구미는 늘 예술에 기울어져있다.
상업 촬영을 하면서 어느 순간 어떻게 하면 좋아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진부하고, 재미 없어졌다. 마치 영화를 보는데 클리셰 범벅인 느낌.
감독이 의도한 대로 관객이 잘 따라가면 성공한 영화겠지만, 반전 스릴러를 좋아하는 성향상 나만의 반전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결국 나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그게 내 색이고, 어떻게 보면 고집이고 그런 것들.
상업 촬영에서 요구하는 기대치나, 결괏값을 맞추기 위해 나의 색을 덜어내는 일을 많이 한다. 다층을 단층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가깝다.
어디 한번 놀아봐, 하면 잘 놀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고 다수의 일에선 깊이 있는 작업을 하기 어렵다. 생각 없이 일하면 안 되지만 일할 때 생각이 길어지면 빠른 실행이 어렵기에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것의 연속이다.
수습하는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다.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 경력을 먹어보니(?) 경력이 주는 힘은 상황 통제, 위기 대처 능력인 것 같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로 수많은 과제와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게 경력직의 역할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게 되는 걸 보니 나도 회사원이 다 됐네.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N 년 째 말하면서 계속 회사를 다니는 나 어떤데.
회사에서 어떻게 예술을 하나 싶지만,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하면 된다.
내가 예전부터 쓰던 글의 주제가 '삶의 전시'인데 결국에 나는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 삶 자체가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프로필 문구에 'attitude as expression'라 써뒀다.
'우림'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표현한 작품과 같다.
우림이라는 이름을 짓고, 실제로 개명을 하며 나는 더 주체적이고 견고해졌다.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에, 늘 돈이 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돈을 많이 줘도 하기 싫은 일은 안 했고, 돈을 적게 주거나 안 줘도 하고 싶은 일이면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여행을 가고, 아름다운 공예품을 수집하고, 방을 꾸몄다. 끓어오르는 마음만큼이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돈을 다 썼다는 이야기) 그로 인해 경험이 확장되고, 안목을 넓히게 되었다.
언젠가 글에서 썼을 텐데 (아마도 자주) 어렸을 때부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래서 오늘을 즐겁게 살아야만 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여기서 본능은 어떤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자 생존을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언제 죽어도 후회 없을 삶을 살았다고 느끼게 되면서 차츰 공포가 무력해졌다. 내 방식대로 극복한 것이다. 어떤 문제든 맞닥뜨리면 돌파구를 찾고 극복하는 게 내가 가진 큰 재능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늘 문제가 주어지니까. (문제가 없으면 문제를 찾아 떠나기도 함)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에 너무나 많은 겁을 먹었는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셔터를 눌렀다. 그 기록들이 쌓여 우주가 되고, 우주는 정체되지 않고 흐른다.
삶이 참 촘촘하다. 좋아하는 일로 촘촘해지는 삶, 얼마나 멋진가.
앞으로 사진이든, 영상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어떤 수단이든지 나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표현하고 기록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