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청년문화잡지 귄있진 2호 기고글입니다.
필진 소개: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현실과 닿아 있지 않은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휴학을 결정한 후 화순에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잘 들을 수 있는 활동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노마드처럼 기후정의운동을 하고 있지만, 광주에서는 광주청소년기후행동 일점오도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3일, 나는 무등산으로 갔다. 그곳에선 국립공원의 날을 위한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고, 한화진 환경부 장관과 강기정 광주 광역시장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참석했다. 경찰의 호위 속에 순조롭게 행사가 진행되는 한편,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환경부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있었던 것이다. 강원도와 전라도, 대전과 서울, 전국 각지에서 이곳 광주로, 무등산으로 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구호들을 외쳤다.
올해 초부터 그런 소식들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새로 지어질 공항을 위해 흑산도가 국립공원에서 해제되었다는 소식, 40년 동안 반려되어 왔던 설악산의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허가되었다는 소식. 국립공원법이 제정된 이래로 제한적으로나마 개발이 제한되었던 곳들에 불과 몇 달 안에 허가가 난 것이다. 설악산은 국내에서 가장 규제가 엄격한 국립공원인데, 개발 사업이 허가되었으니 이제 다른 국립공원들도 위협에 노출되는 일은 불 보듯 뻔했고, 이는 내가 살고 있는 무등산 자락에도 언제든지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음을 의미했다.
누군가는 고작 케이블카 하나 들어서는 일로 왜 이렇게 유난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케이블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케이블카는 절대 작은 일이 아닐 것이다. 더 많은 개발을 위해 전국의 산이 깎이고, 바다가 매워지고, 갯벌이 파헤쳐지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재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집과 터전을 잃고 주변부로 쫓겨났듯이, 케이블카가 지어지고 공항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생명들은 집을 잃게 된다. 어떤 이들에게 개발이란 보다 나은 삶을 뜻하는 단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개발이란 삶 그 자체의 박탈을 의미한다.
나는 기후위기에 대해 알게 되면서 기후가 위기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이 나의 삶과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기후위기는 우리 문명의 토대인 기후가 변화 내지는 붕괴하여 더 이상 기존의 생활 양식을 유지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는데, 이는 굉장히 거대해서 차마 손대고자 하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내가 그 당사자라는 사실도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3월 3일 무등산에서 나는 이곳이 기후위기의 최전선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곳곳의 국립공원들이 파헤쳐진다는 위기감은 그곳에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곧이어 쫓겨나고 밀려나고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이 일이 곧 기후위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미시적인 기후위기들이 쌓이고 쌓여 전 지구적 기후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이 운동은 좁게는 국립공원을 지키려는 운동이지만, 동시에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운동이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서 현재 개발이 진행되는 양상, 그 중에서도 흑산도에 공항이 지어지는 과정을 소개하고 그것이 어떻게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만들어내는지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다수의 생명들이 어떻게 배제되는지, 그 박탈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에게 더 너른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려 한다.
이 땅에서는 끊임없이 개발 사업들이 진행되어 왔다. 사람들은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일으키는 환경 파괴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자 둘 사이의 적정선을 찾고자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국립공원 제도다. 어떤 산이나 섬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다는 것은 그곳이 인간만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 그곳에서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생명들의 세계를 존중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국립공원 제도는 많은 숲과 바다가 난개발로부터 비껴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제도적 보호 장치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올해, 국립공원 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전례가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흑산 공항 건설을 위해 공항이 들어설 부지를 국립공원에서 제외해버린 것이다. 특정 개발 산업을 위해 국립공원을 해제했던 경우는 없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립공원 제도의 본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행정인 것이다. 이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개발이라는 사업이 진행되는 방식을 면밀히 알 수 있다.
흑산공항은 2009년 이명박 정부부터 도서주민의 교통이동권 확보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되어 온 사업이다. 국립공원에는 자연공원법에 의해 지정된 시설만 건설이 가능한데, 당시 환경부는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위해 2011년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함으로써 소규모 공항 또한 ‘공원시설’로 건설할 수 있게끔 하였다. 이와 같은 조치는 국립공원 제도의 정체성에 혼란을 준 시발점이 되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안에서도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시설의 건설 권한을 국립공원법이 허가해준 것이다.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으니 공항을 짓기 위해서는 이제 두 가지 절차가 남았다. 하나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이고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 절차가 또 다른 하나이다. 흑산공항의 경우 2013년 예비타당성 조사는 통과했으나, 2016년의 심의 절차에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보류되었고, 2018년 재심의의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는 경제적 타당성, 철새 보호, 항공기 안전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다. 결국 사업자인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철회했고, 공항건설계획은 잠시 중단되었다.
그런데 2023년, 환경부는 흑산 공항 부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는 방법을 통해 공항 건설의 길을 손쉽게 열어주었다. 이제 사업자는 국립공원에 공항을 짓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비교적 엄격한 절차들을 우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환경회의에서는 즉각 논평을 내어, “환경부는 흑산공항을 위해 국립공원을 해제한 근거와 이유는 제시하지 않은 채 새롭게 편입되는 면적이 해제면적보다 많다는 수치만을 강조한다”며 환경부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흑산도는 개발의 압력과 이에 대한 저항이 맞붙고 있는 개발주의의 각축장이다. 이 공항 건설을 둘러싼 각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얽혀 있는걸까? 공항 건설을 둘러 싼 논의의 전면부에는 세 행위자가 있었다. 사업자인 국토부와 사업에 찬성하는 도민들, 그리고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 단체. 나는 2018년도에 열린 <흑산 공항건설, 무엇이 문제인가?> 국회 토론회와 같은 해 방송되었던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서 이들의 입장이 어디에서 부딪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1. 교통기본권
사업자 측은 도민들의 교통 편의를 이유로 들어 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흑산도는 기상이 좋지 않을 때가 잦아 하루에 4번 육지와 섬을 왕복하는 배가 결항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한 흑산도 주민은 실제로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딸 아들이 아플 때 육지를 쉬이 가지 못해서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고 증언한다. 실제 당시 흑산도를 오가는 여객선 결항률은 11% 가량, 하루 종일 여객선 운행이 불가능했던 날도 52일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보완할 새로운 교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항이 생기면 그만큼 배편이 줄어들며 이동은 보다 어려워진다. 국토교통부의 사업 계획에 따르면 하루 4회 왕복하는 여객선이 공항이 건설된 이후에는 2~3회로 왕복 횟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또한 흑산도 주민들은 목포를 오가며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면 무안이나 여수를 통해 다시 목포로 가야 하니 시간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면서 교통비만 10배 이상 더 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통기본권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공항이 아니라 선박공영제이다. 현재 한국의 여객선은 공영제가 되어 있지 않아 특정 업체에 의해 독점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당연히 도민의 교통기본권보다 선박 회사의 이윤이 우선되기 마련이다. 응급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항이 아닌, 도서 지역의 의료 체계에 대한 공공적 접근이 필요한 일이지, 그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공항 건설의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
2. 관광 산업 및 지역 발전
흑산 공항건설산업 심의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는 2021년 기준 연 53만 명이 흑산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무안공항과 양양공항이 건설될 때 각각 900만 명, 200만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70만, 4만 정도로 예측 대비 3.8%, 5.3%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교통 공공성 분야의 전문가인 김상철은 공항계획에서 추정하는 항공 수요가 근거없이 늘어나기도 하는 등 전혀 신뢰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지역의 인프라 투자 역시 모든 지역경제 요소에 골고루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올림픽 유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지역 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자연파괴와 공공부채만을 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공항을 짓기 위해서는 산을 깍는 평탄화 작업을 해야 한다. 공항이 지어지면 그 부지에 해당하는 만큼의 공유지가 사라지고 오히려 태풍 피해를 강화할 뿐이다. 또 소음 피해는 어떠한가. 이 모든 사회적 비용들도 전략환경영향평가 당시에 반영되지 않았는데, 5000억에 이르는 사업비 또한 부담해야 하는 공항 산업이 어떤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경제 구축 방식은 근본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이미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도는 교통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며, 물과 식량과 같은 천연자원은 부족해지고, 관광 산업이 배출하는 분뇨와 쓰레기, 온실가스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라는 섬이 몇 개 더 필요할 지경이다. 흑산도를 비롯한 다른 섬들도 이런 수순을 밟아야 할까? 과연 이걸 ‘지역 발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흑산 공항 건설을 기원하는 주민들의 바람은 사실 공항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에 대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윤적 동기와 결탁한 정치는 오직 공항 건설만이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 거라며 다른 대안들을 고의적으로 은폐한다. 더 나은 삶은 반드시 무언가를 파괴해야만 가능한 것일까? “환경도 환경이지만, 우리가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흑산도 뿐 아니라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내는 정치가 있다.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 하고, 지역 감정을 이용하고, 장애인을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테러 집단으로 만들어내는 지배 권력의 통치 기제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주민들의 삶의 기반은 파괴되어 가는데 은행과 기업은 이윤을 가져가는 식민화 과정이 반복된다. 그렇게 21세기의 ‘공항 식민주의’가 가능해진다.
전국 각지에서도 공항 건설이 비슷한 양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제 6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따라 기존 15개 공항에 더하여 계획 수립 중이거나 추진 중인 공항이 울릉도, 흑산도, 가덕도, 새만금, 대구, 제주 제2공항까지 6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좁은 국토에 공항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까?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14개 지방 공항들은 제주, 김해, 김포 공항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적자를 합한 금액은 1000억 원이 넘고, 그 중 8곳은 활주로 이용률이 10%도 채 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 비추어보아도 굉장히 비효율적인 사업이 강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항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공항 건설의 추진력에 정치적 이해 관계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들은 공항 건설과 이에 뒤따른 지역 경제 발전을 주민들에게 약속하는 방식으로 표심을 얻고자 했다. 공항 뿐만 아니라 대규모 토건 산업이 같은 논리로 시작되고는 한다. 이는 지방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서울링이라는 구조물을 만들고 있고, 강기정 광주 시장은 복합쇼핑몰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발 사업을 들여오지 않으려는 군수나 도지사를 찾아보기는 드물다. 대규모 건설 사업이 승인되면 일시적으로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는 효과만을 노리고 뒷수습은 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풍토가 ‘유령 공항’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경향은 이번 정부에서도 그대로, 아니 더욱 과열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 기왕에 시작할 거면 화끈하게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시키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발언의 기저에는 예비타당성조사,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제도들을 개발 사업을 막아서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바라보는 인식 체계가 있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흑산도가 국립공원에서 해제되는 결정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제도들이 개발이라는 결정이 초래할 공공성의 약화를 견제해왔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인식과 그에 뒤따르는 상황들은 곧 현행 민주주의 제도의 실패를 의미한다.
신공항 건설은 왜 공공성을 파괴하는 결정인걸까? 이는 기후위기라는 인류 전반의 본질적인 위기에 항공 산업이 큰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항공기는 기차보다 20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항공 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세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6%에 해당한다. 이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며, 건설과 유지 과정에서 더 많은 피해를 야기한다. 이런 항공 산업의 기후에 대한 해로움 때문에 전세계는 기존 공항을 폐쇄하고 신규 건설을 중단하는 등의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의 항공 정책은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또한 비행기는 가장 불평등한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비행기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며, 가장 부유한 1%가 항공산업 탄소배출의 절반을 만들어내고 있다. 공항이 건설되는 과정에서도, 운영되는 과정에서도 그로 인한 피해를 겪는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배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모든 피해는 기후위기를 야기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간다. 각지에 건설되는 공항이 그곳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신공항 건설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문제다. 건설 과정에서의 절차들은 이러한 영향들을 고려하지 못할뿐더러 개발 사업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을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승인의 도구로 작동한다. 대규모 토건 사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조차도 진행 과정에서 형식적인 의견만을 낼 수 있을 뿐이다. 개발의 논리가 담지하고 있는 경제적 합리성 앞에서 근본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 개입의 가능성은 박탈된다. 그 결정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발언권조차, 문제를 인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멸종반란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신공항 건설 문제와 민주주의의 현 위치에 대해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멸종반란은 현행 법 질서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도 기후재난을 가속화할 가덕도 공항 건설을 막을 수 없으리라 판단하고서 가덕도 신공항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특별법을 제정한 민주당사에 찾아가 시민불복종 직접행동을 했다. 누구 하나 해치지 않았고 어떤 재산 피해도 없었으나 사법부는 ‘공동주거칩입’이라는 명목으로 6명의 활동가들에게 벌금을 선고했다. 지구 학살의 범죄는 합법이 되고 공동체를 지키려 행동했던 용기는 불법이 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현재의 법 질서도 기후위기의 공범이라고 선언하며 아직 재판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행 법 질서는 비행기를 이륙시킬줄만 알지, 어떻게 착륙시킬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만약 비행기의 연료가 다 떨어지기 전에 착륙하지 못한다면 그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행기를 착륙시킬 것인가? 그것은 현행 법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필요로 한다. 공항이 어떤 절차를 거쳐서 만들어지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힘이 무엇인지 묻는 것, 그리고 그 제도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목소리가 빠져있는지 묻는 것, 이는 결국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멸종반란의 시민불복종 직접행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다.
공항은 아직 착륙하지 않았고, 연료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기후위기의 실상은 교묘하고 조용히 이루어지는 폭력이자 학살이다. 더 잦은 외로움과 더 깊은 관계의 단절이 동반된다. 이 이야기가 관련이 없는 듯 보이는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이 어떻게 각자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더 잘 돌보며 무너지는 모든 순간들을 함께 붙들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영국 멸종반란의 리더, 젬 벤델이 했던 말은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서로 물음을 던지고 지지해준다면, 우리 내면과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수완을 동원해 붕괴에 대한 두려움과 신념, 확신을 평화롭게 소화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필멸성과 자연과도 화해를 이루고, 사람들 서로 간에도 화해를 이뤄야 하는 때다."
주석
1. 국립공원을 위한 시민의 모임, 흑산공항 추진 실태 보고서, 2022
2. 환경운동연합, “흑산공항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 2023. 02. 02.
3. CBS 김현정의 뉴스쇼,“1년에 50일 배 못 뜨는데” vs “국립공원인데”, 2018. 10. 04.
4. 김상철, “신공항 건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기후위기 시대, 신공항 개발의 문제와 쟁점 토론회, 2022
5. 채효정, “제주 제2공항은 공멸로 가는 길이다”, 프레시안, 2020. 09. 16.
6. 허환주, “법치 운운 윤석열 정부, 정작 ‘꼼수’로 흑산공항 짓는다”, 2023. 02. 14.
7. Stay Ground, “Aviation: A Matter of Climate Justice”, 2023
8. 김상현, “항공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일보, 2020. 11. 25.
9. 장훈교, 서영표, 제주 제 2공항과 민주주의 그리고 기반시설 공동관리자원의 가능성, 2018
10. 김차랑, “데모하는 게 벌 받으면, 데모하게 만든 사람들은 무슨 벌을 받습니까?”, 2022. 11. 26.
11. 전현우,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민음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