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합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비누를 만드는 레시피의 기록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리고 약간의 변형이 섞여 있는 이 레시피들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고대 그리스, 로마 곳곳에서 발견된다고.(The History of Soap, New York Times, 2020년 4월 15일). 물론 처음부터 비누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끊임없이 이어져온 비누를 향한 수요다. 인류가 비누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후, 비누를 향한 수요는 적어도 5,000년 이상 넘게 계속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이 긴 시간 동안 인류가 비누를 통해 얻고자 했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비누를 사용함에 있어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를 정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체를 씻어서 깨끗하게 하며, 혹시나 묻어있을지 모르는 균이 신체 내부로 침입하는 가능성에 저항하는 일. 비누의 모양새와 향은 만들어지는 방법과 원료에 의해 달라질 것이지만, 결국 때를 씻어 낼 때 쓰는 물건, 비누로부터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세정(洗淨), 그리고 항균(抗菌).
이것은 비단 신체에만 적용되는 갈망이 아니다. 이 갈망은 첫 인간이 숨을 쉬기 시작한 이후, 그 영혼 가운데 깊숙이 각인된 갈증이다.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혼돈과 공허, 흑암, 무질서 속에서 살다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단 하루를 살더라도 빛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건강함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 마음을 담는 상자로서 보배합이 존재한다.
매해, 비누를 준비하여 보배합에 담는다. 동방박사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께 드린 황금, 유향, 몰약 예물을 오일로 준비하여 빚은 비누를 말이다. 보배합 비누로 우리 자신의 육신의 더러움을 씻어내며 균의 침입을 예방하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이를 이웃에게도 나누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통로가 되기를 원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 말씀의 빛을 보배합에 담는다. 매일 우리의 영혼이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분의 말씀에 노출되어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는 모든 공허와 흑암, 그리고 아픔과 슬픔을 온전히 씻어가시기를 바라며.
그렇게 보배합은 정결한 삶을 담는 상자가 되어가기를 갈망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빛 아래서 영혼을 씻어내기를 원하는 삶, 어두움 대신 참 빛 안에서 살기를 선택하는 삶,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붙여주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건강하게 사랑하고 섬기는 삶.
그리스도가 보배합에 기대하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태복음 2:11)
자격도, 능력도, 재정도 턱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신 마음을 담아내기를 온 마음 다해 소망한다. 보배합의 모든 날들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그날, 사랑의 빛 안에서 정결하게 살아간 우리의 삶을 담아 그리스도께 선물로 드려지는 상자로 빚어지는 날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