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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Nov 08. 2020

나의 밤을 지켜주던 너.

* 어린 시절 당신 방에 있던 한 가지 물건에 대하여 써주세요. 단 그 물건의 입장에서 당신과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고 글을 써주세요. 


내가 눈을 떴을 땐 주위가 온통 소란스러웠다. 큰 길가에서 나는 자동차 소음이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왜 하필 이런 집에 온 것일까?' 내가 투덜거릴 때 앞에 누군가가 보였다. 두 아이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세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 봐~ 색깔도 바꿀 수 있어. 진짜 예쁘다."


여자아이는 내 스위치를 몇 번 매만지더니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남자아이는 처음에는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관심이 없는 듯 손에 쥔  자동차 장난감을 장판에 굴렸다.


"안녕~ 앞으로  잘 부탁해. 잘 땐 우리 둘 뿐이라 좀 무섭거든."


여자아이는 나를 마주 보며 말했다.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따뜻한 아이의 음성에 답해 주고 싶었지만 금세 스위치는 0ff가 되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여자아이의 눈빛과 목소리를 반복해서 되뇌었다. 

'언제 나를 깨워줄 거니. 어서 밤이 와야 할 텐데~ 시간아 빨리 가라.'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다. 며칠 동안 아이는 나를 켜주지 않았으니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았던 곳과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밖에서는 더 이상 차 소리도, 술을 먹고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아... 이사를 하느라 나를 켜지 않았구나~'


내게 말을 걸어주었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고된 하루를 보낸 것이 분명했다. 


"누나~ 여기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 나 손잡아 주면 안 돼?"

"그래도 작은 꼬마전구가 있어서 덜 깜깜하잖아. 알았어. 이쪽만큼 와서 자."


겁이 많은 남자아이의 손을 여자아이는 꼭 잡고 웅얼웅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보였다. 나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키득 거리는 남자아이를 보면서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듣고 싶었는데... 좀 더 큰소리로 이야기해 주지.' 잠시 후 조용한 적막감이 방을 채웠고 아이들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은은하게 방을 밝히며 잠든 아이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긴 머리카락 몇 가닥이 여자아이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 내가 손이 있다면 귀 뒤로 넘겨줄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는 일어나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눈을 감고 있는 걸 보니 잠에 취한 듯 보이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너는 우리 때문에 잠도 못 자네. 꺼줄까?"

"아냐 나는 이렇게 잠든 너희들을 바라보는 게 너무 행복한걸. 어서 다시 자도록 해." 


나도 모르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는 꿈속이라고 생각했는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정말... 고마워."  아이는 이 한마디를 남긴 채 다시 잠에 세계로 불려 갔다. -고마워- 이  한마디에 나는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태어나 누군가에게 처음 들어보는 '감사'였기에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이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 존재의 이유가 명확해졌다. 


'너는 아침이 오면 이상한 꿈을 꿨다고 생각하겠지? 꼬마전구가 말을 했다고 말이야. 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오래오래 네 곁에서 빛이 되어줄게. 어두운 밤 너희들을 지켜줄 거야.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마.~'        


- 부모님과 떨어져 잠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남동생과 한동안 같은 방을 사용했다. 아직 어리고 겁이 많았던 우리를 위해 아빠는 작은 조명을 사주셨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빛났던 꼬마전구. 시골로 이사 후 조용한 밤은 더 무서웠지만 이 작은 전구는 나와 남동생을 지켜주는 든든한 밤의 파수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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