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Dec 12. 2020

당신이 훔친 건 "나의 키"였습니다.

주말 아침, 아이가 깨기 전 나는 집을 나섰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집 쓰레기를 버리는데 보통 나는 아침 시간을 이용하는 편이다.


"추운데 수고하시네요."

"아이고 뭘요. 박스 이리 주시고 가세요."


경비실 아저씨를 자주 만나는 편이라 나는 꼭 과일이나 따뜻한 음료를 가지고 나온다. 친절은 친절을 낳는다고 내 손에 들려있었던 재활용 중에 아저씨는 종이 박스를 가지고 가셨다. 나 대신 분리해 주시는 아저씨께 감사를 표하며 나는 주머니에게 귤 두 개를 건네드렸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 우유갑들이 눈에 밟혔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우유갑으로 학교에서 만들기를 해야 한다며 4개 주워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거 가져가도 되죠 아저씨?"

"그럼요." 


나는 작은 우유갑 4개를 주워 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어 집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 쏙  잡히는 작은 우유갑을 집에 와 한번 떠 씻어 잘 마르게 뒤집어 놓고 아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조용한 주방에 앉아 빈 우유갑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아픈 기억이 머릿속을 비집고 나와버렸다. '그래, 국민학교 1학년 때였어.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그때를...'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정말 왜소한 꼬맹이였다. 처음 반을 배정받아 교실로 들어갔을 때 키 순서대로 1열로 섰었는데 나는 앞에서 3번째였으니 말이다. 1학년 때 생활기록부에는 18kg 몸무게가 아직도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다. 키도 작고 빼빼 말랐던 나를 학교에 보내면서 부모님은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나는 먹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고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엄마는 학교  우유 급식이라도 잘 먹으면 내 키가 1cm라도 클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셨을 테다. 하지만 나는 우유를 대부분 먹지 않고  학교 앞 문구점에서 키우는 누렁이에게 우유를 부어주곤 했다.  나 대신 우유를 먹은 강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크고 있었다. 이런 딸의 못된 마음도 모른 체 엄마는 없는 살림에 우윳값을 항상 챙겨 주셨다.


"오늘 우윳값 내는 날이지? 이거 꼭 선생님께 드리고 꼬박꼬박 잘 마셔서 키 쑥쑥 크자."


등교 시간이 늦어 엄마는 부랴부랴 내 손에 천 원짜리 3장을 꼭 쥐어주셨다. 그리고 빨리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혹시라도 지각을 할까 봐  학교까지 가는 지하도를 나는 신나게 뛰어갔다. 교문을 통과해서야 나는 숨을 돌리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야~ 너 이리 와봐."

"네?"


나보다 머리가 2개가량 더 커 보이는 오빠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 뒤에는 두 명의 오빠가 더  있었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빤히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야!! 손 좀 펴봐~"


무서운 오빠들의 눈빛에 나는 겁을 잔뜩 먹은 토끼처럼 눈이 꺼졌다. 내 손안에 엄마가 쥐여준 지폐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나는 손을 펴 보였다. 그 순간 나를 불렀던 오빠는 눈 깜짝할 사이 돈을 들고 교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오빠들도 있는 힘껏 그 뒤를 따랐다. 8살이었던 나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 체 뛰어가는 오빠들의 뒷모습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같은 반 친구가 멍하게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교무실에 데리고 갈 때서야 나는 서럽게 눈물을 뿌려댔다.


"왜 우는 거야? 무슨 일인데? 맞았니?"

"아니요. 흑흑 오빠들이 돈을 가져갔어요."

"몇 학년인지 알아? 어디로 들어갔는데"

"모르겠어요. 3명이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손을 잡고 4학년, 5학년, 6학년 전체 교실을 순회하셨다.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곳에 그 오빠가 있는지 내게 물으셨지만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겁이 많고 소심했던 나에게 나보다 학년이 높은 30개의 학급을 들어가는 일은 고문과 같았으니까...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던 나는 결국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눈뜨고 코 베인다더니 딱 이런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들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그 차가운 눈빛과 웃음소리만 악몽 속에 나타났다. 결국 나는 그 오빠들도 우윳값도 찾지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으셨고 한 달간 드시던 우유를 내 책상에 조용히 올려놓으셨다. 나는 차마 그 우유를 문구점 앞 누렁이에게 주지 못했다.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서 우유를 싫어했던 내가 우유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바람대로 내 키는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담임 선생님께 감사했던 만큼 나는 오랫동안 그 오빠들을 미워했다. 꾸깃꾸깃 구겨진 3000원을 가지고 그 녀석들은 무엇을 했을까? 학교 앞 문구점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었던지 아니면 오락실에서 신나게 게임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나 이외에도 몇 번 다른 힘없는 아이들의 돈을 훔쳤겠지. 과연 그들은 착한 어른으로 잘 자랐을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을까? 그 아이들이 나와 같은 일을 학교에서 당하지 않으라는 법이 과연 있을까?


내 눈앞에 뒤집어져 있는 우유갑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30년 전으로 훌쩍 돌아가 있었다. 가슴이 콕콕 쓰려왔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들을 찾아 당당하게 이야기했더라면 좋았을걸... 당신이 훔쳐간 건 돈이 아니라 내 키였다고...' 나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8살 꼬맹이였다. 나는 그 후로 돈은 꼭 가방 가장 안쪽에 잘 넣고 학교에 다녔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때 아들이 일어났다. 깨끗하게 씻어놓은 4개의 우유갑을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나를 꼭 안으며 고맙다는 아들. 언젠가 아이에게도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아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우유를 엄마는 잘 먹지 않았다고... 우유를 먹기 시작했던 때가 있었다고... 그때 나쁜 녀석들을 만났노라고... 그리고  절대 약한 아이의 것을 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https://bit.ly/3iPGiED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이제 그림도 그려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