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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Dec 07. 2020

나는 이제 그림도 그려야겠다.

오손도손 또바기 드로잉

저는 친정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걸 참 좋아합니다. 외모나 성격은 엄마와 정반대인 저인데 엄마의 어린 시절을 듣고 있으면 '아아~ 나도 엄마를 닮았구나.'라고 느끼게 되거든요. 꼬꼬마 시절부터 엄마는 꽃과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셨어요. 종이와 연필이 귀했던 시절, 엄마는 시골집 마당에서 밤이면 나뭇가지로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리셨답니다.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께서 엄마를 혼내시면서 흙을 메꾸고 메꾸고 하셨죠. 그런 할아버지가 싫어서 엄마는 더 크고 깊게 땅을 파며 꽃을 그렸어요. 할아버지께서 메꾸지 못하도록 파놓은 흙을 싹싹 쓸어 집 앞 개울까지 갔다 버리고 나면 할아버지는 빗자루를 들고 엄마를 쫓아오곤 하셨죠.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엄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번졌습니다.


학창 시절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바쁘셨어요. 하지만 가끔씩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죠. 그건 꽃을 바라볼 때, 책에 몰입해 있을 때, 그리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릴 때였습니다. 저는 가끔 엄마에게 만화에 나오는 공주님을 그려달라고 조르곤 했죠. 그러면 엄마는 뚝딱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공주님을 그려주곤 하셨어요. 엄마가 그림을 그렸으면 했습니다. 그랬다면 저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꿈을 접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엄마처럼 저도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그림을 그리면 늘 상을 탔죠. 예고를 가고 싶었고 미대를 꿈꿨지만 삶이 뭐 제 뜻대로 되나요? 저는 제 꿈과 뚝 떨어져 살아왔어요. 언젠가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제가 다시 그림을 그린 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바로 육아를 하면서 아이가 제게 스케치북을 들고 왔을 때였죠.


"엄마. 사자~ 사자 그려주세요. 엄마 엄마 코끼리요. 아니 악어요. 티라노사우르스는요?"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스케치북 한 면을 가득 채울 때까지 눈을 반짝이며 저를 바라보았죠. '아아~ 친정 엄마도 이런 맘이었겠구나.' 그때 알았어요. 엄마가 불평 없이 공주들을 그려주셨던 이유를요. 한번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제 학창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잊고 살았던 '그림 그리기'를 아이가 깨워주었습니다. 유전은 무서운 것 같아요. 아이도 그리기를 좋아해서 유치원 때부터 상을 타오더군요. 아이는 지금도 제가 그림을 그리면 무척 좋아합니다. 같이 앉아서 그림으로 소통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제가 친정 엄마를 보며 '엄마가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아이도 저를 보며 그런 맘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젠 제가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루지 않으려고요. 


저는 그림의 기초도 없고 늘 따라 그렸기에 기초적인 것부터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미술을 전공한 문우님께서 내년에 모임을 오픈합니다. 커리큘럼을 읽어보니 저에게 딱 필요한 훈련이더라고요.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울 수 있다니... 


새로운 목표가 생겼지 뭐예요. 올해 목표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자'였는데 내년에 목표는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자'입니다. 저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꼭 오겠지요? 그날이 오면 아이와 함께 스케치북을 들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렵니다. 행복하게 웃으며 말이죠.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빈센트 반 고흐



올해 그렸던 그림. 



https://brunch.co.kr/@snowysom/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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