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네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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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큰 이모 아들의 결혼식 이후 오랜만에 가는 제주였다. 첫 번째 암 수술을 마친 막내 이모는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서 밝은 모습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가장 축하받아야 할 동생보다 가족들은 모두 막내 이모의 몸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빌었다. 힘든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건강하게 꽃길만 걸으면 된다고 나도 이모를 꼭 안아주었다. 그날이 선명한 사진처럼 가슴에 아직도 남았다.
나는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간헐적 단식으로 식습관을 바꾸면서 구강염도 없어졌는데 통 자지도 못하고 걱정이 심했는지 입안은 온통 하얀 염증으로 가득했다. 제주도를 갈 때마다 기분 좋은 일들로만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그나마 이모가 항암치료를 잠시 쉬는 동안 제주 집에 머물렀고 때마침 우리가 방문하는 날짜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모가 병원에 있었다면 코로나로 만나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모 생각뿐이었다. '이모를 만나서 눈물만 흘리면 어쩌지? 나는 이모를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까?' 자꾸만 눈가가 뜨끈해져서 차가운 손으로 눈을 꾹 눌러야만 했다. 하얀 구름 위로 밖을 바라보던 아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엄마~ 슬퍼요? 엄마 눈이 빨개~"
"아니야. 그냥 이모 만날 생각에 너무 좋아서..."
"많이 아픈 걸까요? 나 보면 좋아지실 수도 있어요."
'좋은 생각만 하자. 좋은 생각만... 이모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긍정적인 것들만 떠올리기 위해 억지로 웃어 보였다. 제주에 도착해 이모집으로 가면서도 몇 번이나 다짐을 해야 했다. '울지 말자. 울면 안 돼. 웃자 웃는 모습으로 예전처럼 만나자.' 이모는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는지 현관 밖에 계셨다. 두꺼운 벙거지 모자에 헐렁해진 옷, 44 사이즈가 저렇게 커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놀라며 나는 차에서 내렸다. 양손을 벌리고 활짝 웃는 이모를 나는 품에 안았다. 두꺼운 옷 사이로 뼈마디가 느껴졌다. 괜찮냐고 아프지 않냐고 너무 고생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이모~ 보고 싶었어. 아주 많이..."
"내 새끼~ 제주 바람 많이 불지? 어서 들어와 춥다 추워."
이모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는지 안았던 나를 빨리 놓아주고 현관문을 열었다. 이로써 우리는 울 타이밍을 자연스레 넘겼다. 아들과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거실로 들어갈 때였다. 작년에 보지 못했던 녀석이 저만치에서 뛰어오더니만 내 발 앞에서 발라당 넘어지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낯선 고양이에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모 강아지는 둘째 이모집으로 보냈다면서 고양이라니... 이 녀석도 보낼 거지?"
"아냐~ 요노므시끼가 얼마나 이쁜 줄 아니? 봐봐"
이모는 소파에 앉아 고양이를 불렀다. 내 앞에 배를 보였던 녀석은 금세 이모 품으로 달려가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도 모자라 이모의 눈을 맞추며 꾹꾹 안마를 해댔다. 강아지보다 더 애교스러운 고양이라니... 보통 강아지나 고양이는 아이들을 자기 아래로 본다. 아이가 만지려고 하면 이를 드러내거나 발톱을 새운다. 하지만 아들이 가서 몸에 손을 대어도 얌전한 고양이는 그대로 아이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마~ 우와 너무 예뻐요. 나 고양이 이렇게 만져보는 거 처음이에요. 할머니 집고양이는 너무 사납잖아."
고양이를 만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아들은 그 녀석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아들이 고양이 장난감으로 양이와 놀아주는 동안 이모는 왜 이 녀석이 여기 오게 되었는지를 들려주었다.
"올해 봄, 이모들이랑 숲길을 걷고 있는데 세상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숲 속에 있는 거야. 아무리 둘러보고 찾아봐도 어미 고양이도 다른 새끼 고양이도 없더라고....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아서~ 담요로 돌돌 말아 데리고 왔지. 목숨 구해준 걸 아는 건지 어찌나 이쁜 짓을 하는지... 첨 왔을 땐 컵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았어. 이젠 청년냥이가 되었지만..."
"이모 안 힘들어? 몸도 약해졌는데... 요 녀석 신경 쓰다가 이모 힘들까 봐 난 걱정인걸"
"있지. 이 아이가 커갈 때 이모가 암이 재발했잖아. 처음엔 너무 슬프고 힘들었는데 이 녀석이 이모를 얼마나 위로해 줬는지 아니? 요놈 볼 때마다 웃어서 이모는 이 녀석이 암 치료제라고 생각해. 웃다 보면 아픈 것도 잊어버린다니까..."
이모의 말을 듣고 고양이를 다시 보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모는 더 많이 아프고 힘들었겠지? 내가 이모에게 해줄 수 없었던 걸 네가 해주고 있구나~ 너무 고마워 고마워~' 몸은 야위었어도 이모의 표정이 밝았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이모가 절망하며 눈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봐 나는 마음이 무거웠었다. 이런 내게 고양이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 말라고 눈으로 말을 건네는듯했다. 그제야 나도 이모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이모와 나의 만남은 어땠을까?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눈물로 제주 바다를 헤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둘 다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므로... 고양이 덕분에 우리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웃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었다. 이모집으로 향했던 발걸음보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웠다.
"정말 고마워. 다음에 맛있는 간식 양손 가득 들고 올게. 그때까지 우리 이모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