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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Nov 25. 2020

나는 올해 김장 전투에 참전하지 않기로 했다.

150포기 배추들아 안녕.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자연스럽게 이 음악이 떠오르면 몸뚱이 곳곳 한기가 올라온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미션 생각으로 머릿속이 묵직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 to the 장"


머릿속으로는 '당연히 해야지 해야지'하면서도 '하고 나면 얼마나 몸살로 고생을 할까' 두려움이 더 커진다. 작년까지 8번의 김장 전투를 치르면서 몸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첫 김장은 2012년 겨울로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임신 4개월이었다. 혼자 살 때 김치는 담가본 적 있다는 소소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장을 하신다기에 룰루랄라 아무 생각 없이 시댁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연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절여져 있는 배추들은 마치 커다란 배추 꽃다발을 연상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른 두 명이 들어가도 남을 듯한 빨단 고무 통에 김장 양념들이 가득 채워졌다. 쪼그리고 앉아 배추에 양념을 척척 바르고 발라도 150포기의 배추들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첫 김장 전투에 참전했던 나는 '김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몸에 남은 부상은 1달 가까이 침을 맞아야 하는 정도?


2014년 김장. 따박따박 걸어 다니던 꼬꼬마 아들은 엄마를 도와준다고 절인 배추를 가져오다 커다란 양념통에 퐁당 빠졌다.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꺼내었다. 양념의 매운 독이 여린 살에 올라와 후끈후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그해 김장이 유독 맛있었다며 지금도 놀리신다.


시누 둘은 모두 직장 일로 바빠 오지 못한 8번의 김장~

통이라도 가져와서 담아갔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힘들었는지 택배로 보내달라는 시누들. "내가 더 늙으면 주고 싶어도 못 줄 텐데... 이렇게라도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겠니?"라고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왜 김장은 며느리만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며느리인가? 자책 아닌 자책을 하며 "착한 며느리"병에 걸린 건 아닌가 하는 자문도 해봤다. '얼마나 바쁘면 안 오겠어... 내년에는 오겠지. 적어도 김장 수고했다는 말은 하겠지.' 번번이 이런 생각들이 현실과는 동떨어진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김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남쪽나라 김장은 비교적 느린 편이라 12월 초에 시작된다. 시어머니께 김장 일정을 물으려고 통화를 하는데 곁에 있던 남편이 바꿔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엄마, 이번에는 각자 집에서 김장하시게요. 코로나도 그렇고..."

"그래도 김장은 해야지. 누나들 김치는 어쩌고~"

"누나들도 좀 각자 하라고 해요. 왜 매번 어머니랑 애엄마 둘이서 고생해야 하는데?"


통화가 길어지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8년 동안 나 혼자만이라도 김장 전투에 참전시켰던 남편이 무슨 일일까 싶었다. 모른 척 주방에서 왔다 갔다 거리며 귀를 쫑긋거렸다. 긴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올해 김장은 각자 집에서 하기로 했어요. 그리 알고 장모님 집에서 우리 먹을 것만 하고 와요."


이 한마디에 가슴이 뻥 뚫리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순간 전화기 너머 어머님 안색이 좋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시어머니께서 베풀기 좋아하고 사랑 많으신 분인걸 나는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다시 전화를 드려 어머님 기분을 풀어드렸다. 그리고 내년에는 시누들과 같이 김장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올해는 오지 말고 친정에서 김장을 하라는 말씀을 하시며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이번 결혼기념일 선물 이후로 쭉 큰 그림을 그리는 남편이 수상하긴 하다. 자꾸 새 낚싯대를 사고 싶다며 카톡을 보내와도 나는 '다음에요. 다음에'라고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비상금을 털어야 하는 걸까? 나는 속없이 배시시 웃었다.


나는 지금까지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며, 덤덤한 게 아니라 덤덤한 척하며, 아픈데 안 아픈 척 힘든데 안 힘든 척~~ 뭐든지 "척척" 해내는 며느리였다. 말도 못 하면서 김장 때마다 속상했다. 올해는 남편이 총대를 매 준 덕분에 김장 전투에 참전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내년에는 가야겠지만 미리 시누들에게 이야기해서 함께 김장을 하자고 말할 참이다. 침묵이 금일 때도 있지만 독일 때도 있다. 말하지 못해 독이 퍼져 내가 죽어가는 것보다 표현해야 할 때 꼭 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임을 요즘 배우고 있다.


150포기 배추들이여 올해는 만나지 않는 걸로... 안녕~

https://brunch.co.kr/@uriol9l/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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