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발가락 모두 10개씩 눈도 귀도 얼굴도 너무 예뻐~ 사진 찍었어요. 봐봐~ 예쁘지?"
"아파 너무 아파요... 아... 파요"
나는 아직 마취에서 깨지 않아 연신 아프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나마 무거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볼 때 남편은 이때다 싶었는지 폰으로 찍은 아들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픔에도 빙긋 웃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14시간의 진통을 했지만 내 골반에 꽉 끼어있었던 아이는 결국 응급 수술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수술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았고 내가 처치를 받는 동안 남편이 간호사가 데리고 나온 아이를 안아봤다.
"너무 예쁘다 우리 아기.. 아~ 점은? 보이는 곳에 점은.... 없었어요?"
"응 없었던 것 같아. 걱정 말고 일단 눈 좀 더 감고 있어요."
진통제가 듣지 않아 호흡곤란이 몇 번이나 와서 나는 산소통을 붙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이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내 품에 안는 데까지 4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조금씩 몸을 회복하면서 아이의 수유시간이 되면 나는 혹시 아이 몸에 있을지 모르는 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머리, 얼굴 목과 손... 내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에는 점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임신기간 동안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초음파를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몸 어딘가에 있을 '점'의 행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직 아이가 나와 분리되어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도 점에 집착했던 걸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리에서 허벅지 안쪽까지 내려오는 '붉은 점'은 신생아 때는 태열처럼 흐릿했다고 엄마는 말씀해 주셨다. 크면서 서서히 지워지겠거니 했지만 몸이 커짐과 동시에 그 점도 함께 크기를 키워갔다. 언뜻 보면 화상 자국이나 누군가에게 맞은 붉은 멍처럼 보였기에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면 아줌마들의 안타까운 눈빛이 쏟아졌다.
"아이고 이쁜 애가 어디서 다친 거야? 맞은 건 아니지?"
"아... 이거 점이에요. 점. 제가 임신했는지 모르고 임신 초기에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주머니들이 물어올 때마다 20대 후반이었던 엄마는 그런 핑계를 대야만 했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사춘기가 오면서 나는 이 붉은 점이 혐오스러웠다. 남들이 보는 시선이 불편해지면서 목욕탕을 가지 않고 집에서만 씻었다. 아무리 더워도 짧은 반바지와 허벅지를 드러내는 치마는 입지 않았다. 점만 아니면 나름 균형 잡힌 몸매였던 내가 비키니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겐 이렇게 원치 않는 각인이 새겨진 걸까? 진짜 지우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평소에 보이지 않는 곳이기에 잘 가려야만 했다. 워낙 넓은 범위라 성형수술은 꿈도 못 꿨다.
그렇게 내 몸에 불만 가득이었던 시간을 지나 20대 후반일 무렵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해 있었던 나는 근육 이완제 부작용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의사는 약물 부작용 같다며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하는 수없이 인근 피부과에서 환자복을 입고 진료를 기다려야만 했다. 슬리퍼를 까딱까딱하고 있을 때 나와 비슷한 붉은 점이 이마에서부터 목까지 얼굴의 절반을 덮은 소녀가 내 옆자리에 살며시 앉았다.
나도 모르게 소녀를 뚫어져라 보면서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나 보다. 소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오른손에 있는 손수건으로 점을 가려 보였다.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얼굴을 가려왔을까?' 소녀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내가 보이는 곳에 붉은 점이 있었다면 나도 똑같이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적어도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점이 있지 않은가~ 그 소녀를 보고 난 다음부터 나는 스스로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 후 이런 일이 있었다. 군살을 빼겠다는 목표로 잠시 헬스장에 다닌 적이 있다. 2시간 동안 땀을 쭉 빼고 나서 샤워실에 들어가 씻고 있는데 운동을 끝내신 아주머니께서 내 곁으로 다가오셨다.
"어머 아가씨? 이거 흉터야? 어쩜 좋니~"
"아! 이거 붉은 점이에요. 엄마가 저 조신하게 긴치마 입고 배꼽티 입지 말라고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있었네요. 아프거나 보이는 곳에 있는 거 아니니까요. 저는 괜찮아요."
"어머 그래~ 아가씨가 엄청 긍정적이네. 보기 좋아."
내 입을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웃으며 뱉어놓고서도 스스로가 놀랐다. 그렇게 평생 동안 나에게서 없어지기를 바랐던 '붉은 점'을 괜찮다고 말하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그 후로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나는 더우면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남자 친구에게도 숨기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임신을 하면서 '붉은 점'이 다시 스트레스가 되었다. 엄마의 붉은 점이 아이에게 유전될 수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 후부터 말이다.
'혹시라도 내 붉은 점이 아이의 몸에 있으면 어떡하지? 그게 보이는 곳이면 어떡하면 좋을까? 그걸 보고 날 원망하면... 왜 초음파에서는 점을 못 찾는 거야.' 출산이 가까워 올수록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극도의 예민함이 출산에 영향을 준 것인지 첫 출산은 보통 예정일을 넘긴다고 하는데 나 3주나 일찍 진통이 왔고 그렇게 수술로 아이를 만났다. 병원에서 1주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일을 보내고 집에 와 아이를 씻기면서 나는 찬찬히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여기 있네. 세상에나..."
나와 아이를 이어주던 탯줄에서 3cm 떨어진 곳에 나와 같은 붉은 점이 보였다. 새끼손톱만 붉은 점은 손가락으로 조금만 눌러도 하얗게 변할 만큼 연했다. '유전이 된다더니 어쩜 이렇게 귀엽게 새기고 태어난 거니.' 아이의 작은 점을 찾고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다행히 한해 두 해가 지날수록 그 점은 연해지면서 지금은 연한 핑크빛 하트 모양을 띄고 있다.
"엄마 나 엄마 닮아서 배에 핑크 하트점 있잖아요."
"그러게~ 엄마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하트가 새겨져 나온 게 아닐까?"
친정엄마는 나를 키우며 내 붉은 점을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해했을까? 보이지 않는 곳일지라도 여자아이에게 큰 흉터처럼 보였을 테다. 그래서 임신 초 자신이 약을 먹어서라고 말씀을 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릿하다. 역시 엄마가 되고서야 친정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나 보다. 한때 나는 다시 태어나면 티 한 점 없는 하얀 피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붉게 새겨진 점은 엄마가 겹겹이 새겨놓은 하트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어 꼭꼭 숨겨둔 엄마의 사랑이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