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겨울방학을 한지도 이제 한 달. 고작 2개월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고 모두 온라인 수업을 했기에 아이는 수학 문제를 어려워하고 있다. 하루에 2페이지씩 나와 함께 두 자리 연산을 하고 있지만 자꾸 '나중에 나중에'를 반복하는 아들의 '미루기'에 내 눈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너 곧 2학년이야. 두문제만 더 엄마랑 풀어보고 쉬자 응?"
아이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작은 동그라미를 억지로 숫자 옆에 그려나갔다. '몇 번이나 설명해 주었는데 아직도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손가락을 펴고 있니... 환장하긌네.' 속으로는 열불이 터져 나왔지만 꾹 참으며 동그라미가 다 그려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기다리겠다는 내 다짐과 다르게 손에 쥐어진 색연필을 자꾸만 아이의 문제지를 콕콕 두드렸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조바심일 터... 아이는 느릿느릿 두 문제를 풀고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를 바라보았다.
"어려웠을 텐데... 잘했어. 내일 또 해보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 보이며 아이에게 엄지 척을 해주었지만 아이의 눈빛 속에서 내가 보인 답답함이 읽혔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행동에서 느껴졌겠지.' 차분히 기다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질문이 많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내 나름대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데 종종 막힐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말 이해는 되지?"라고 물어본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이런 시간이 반복될 때면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2년 전 엄마 강의에서 들었던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라는 내용이다.
1990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대학원생인 엘리자베스 뉴턴이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한 사람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고 다른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이 음악은 동요나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노래였다. 모두 100곡이 넘게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두드리는 사람은 50% 정도가 정답을 맞혔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제목을 맞춘 노래는 단 3곡뿐. 이 차이가 바로 정보 전달자와 정보 수용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라는 것이 이 실험의 요지였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상대방에서 전달해 주면 절반이라도 알아듣겠지 하는 표준을 가지고 있다. 회사의 ceo와 직원, 교사와 학생, 강사와 청중, 부모와 아이, 아내와 남편. (아내가 하는 말을 남편은 3%만 알아듣는다고 했을 때 모두들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남편에게도 정보 전달자로서 너무 높은 기대치를 아내들이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예 모르거나 적게 알고 있는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에 무능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를 가리켜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지식의 저주'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내 설명을 듣고 고작 3%만 알아들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비단 육아에서 뿐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에도 나는 너무 높은 기준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나? 정보를 전달할 때 전혀 모르는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건 아니었을까? 결국 해결책은 듣는 자를 위한 공감 능력과 배려에 있다. 수없이 두드려도 듣는 자가 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거기서 일을 멈춰야 제대로 된 정보 전달자다. 그리고 잠시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그를 위해 단지 두드리는 박자가 아닌 멜로디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오늘도 아이는 쫄랑쫄랑 내게 와 질문이 한다.
"엄마 우주에는 별이 몇 개나 있을까?"
(우주에는 약 1000억 개나 되는 은하가 있어. 그리고 은하마다 약 1000억 개의 별이 있지. 그럼 우리가 올려다보는 밤하늘에는 약 1000억 ×1000억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는 거겠지. 그런데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겨우 600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렇게 말하면 아이는 고개만 갸우뚱할 것이다. 아직 아이에겐 큰 수에 대한 개념이 약하기 때문이다. 잠시 멈춰 머리를 굴린다.~~ 아이의 언어로 다르게 해석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멜로디를 늘 연구해야 하니까...
언젠가 아이가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내가 나이가 들어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분명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아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멜로디를 들려줄까? "엄마~ 이건 말이죠. 내가 천천히 이야기할게요." 흰머리가 난 향기 할머니와 그 앞에 앉아있는 중년의 아들이 모니터 위에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