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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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 빌런이었던 옆집이 이사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다. 인테리어 공사로 벽을 뚫는 드릴 소리가 요란했으나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리모델링 공사가 다 마무리되었음에도 옆집은 보름이 넘도록 잠잠했다.
'이번에 이사 오시는 분들은 좋은 분이셨으면 좋겠는데...' 외출 후 들어올 때마다 나는 비어있는 옆집을 보며 그렇게 빌고 빌었다.
"너희 옆집 곧 이사 갈 거야. 우리 라인에 사는 아이 엄마인데 친정에서 살다가 둘째 낳고 그쪽으로 간다더라.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들었어."
"아~ 언니 정말요? 그 분들은 어때요?"
"글쎄~ 그냥 인사만 하던 사이라서~ 첫째는 4살 정도고 둘째는 어려. 이제 2~3개월 되었을 거야."
"애 엄마니까 친하게 지내야겠네요. 고급 정보 고마워요 언니~"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들 친구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내심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오지랖은 아니지만 혹시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의 말대로 며칠 지나지 않아 옆집은 이사를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린 20대 중반의 부부, 4살 여자아이와 갓난아이. 예상에 없었던 강아지 한 마리까지...
"안녕하세요. 옆집이예요. 저희 아이들이 많이 울어요. 죄송한데 이해해 주세요."
"저도 엄마인걸요. 아직 어리니 충분히 이해하죠. 걱정 마셔요.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옆집이 이사 온 다음날 저녁, 어린 엄마는 나에게 떡을 내밀었다. 참 싹싹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도 다용도실에서 귤을 쇼핑백에 가득 담아 주었다. 수줍게 웃는 그녀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말없이 응원의 눈빛만 보냈다.
층간 소음을 불렀던 옆집이 가고 드디어 제대로 된 이웃을 만난 거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보기 좋게 깨졌다.
"진짜 눈치 보이네. 자긴 괜찮아?"
"현관을 못 나가겠어요. 이럴 줄은 몰랐는데..."
남편과 나는 저녁을 먹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유인즉슨 우리 집 현관문을 열 때마다 옆집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는 것이었다. '띠리릭'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왈왈' 개가 짖기 시작하면 그 뒤로 '으아앙~' 아이 울음소리가 문을 넘어 들려왔다. 그 후에 강아지를 윽박지르는 아이 엄마의 악 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상한 건 강아지에게 성질부리는 게 꼭 나에게 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육아 스트레스가 심한가? 곱상하게 생긴 엄마가 저렇게 화를 내다니... 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우리 가족은 이 불편한 상황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100일밖에 안된 아이를 어쩌면 아이 엄마는 겨우겨우 재우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터였다. 그 틈에 남편이 혹은 내가 현관을 열어서 평화를 깬 건 아닌지... 그 후로 아무리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닫아도 귀 좋은 강아지는 짖어댔다. 그리고 아이는 서럽게 울었으며 여자는 소리쳤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외출할 때마다 옆집 눈치를 보는 이웃이 되어 있었다.
"옆집 이사 갔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제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다니... 저렇게 스트레스받을 거면 아이가 좀 더 자랄 때까지 강아지를 어디에 맡기든지 해야지. 7시에 출근하려고 나갈 때도 개가 짖고, 아이가 울고, 애 엄마는 소리 지른다니까. 거기 까지면 다행이게? 애 아빠도 같이 막 싸워. 대환장 파티야."
"뒷베란다에 줄이라도 메달까? 그거 타고 내려갈래요?"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남편을 달래야 했다. '이웃 복이 이렇게 없을 줄이야.'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긴 할 것 같은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어디에 조언을 구해야 할지도 암담하다. 정든 반려동물을 보내지 못하고 어린아이를 키워야 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조만간 빵이라도 만들어 옆집 초인종 눌러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나? 오늘도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며 옆집 눈치를 보고 있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