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돌산대교를 지나 40분쯤 들어가면 보이는 작은 마을. 주변은 온통 논밭이어서 농번기가 되면 꼭 이틀은 학교를 쉬고 모를 심고 밭으로 가 잡초를 뽑아야 했던 그곳으로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농사를 지으러 들어간 곳이 아니었기에 두 아이를 국민학교에 등교시키고 나면 남편과 나는 여수 시내 쪽으로 출근을 했다.
시골로 이사를 오며 받은 대출이며 6명의 동생들 뒷바라지며 줄줄 돈 들어갈 곳은 왜 이렇게 많은지... 우리 나이 이제 30대 초반!! 하고 싶은 꿈을 포기한 체 택한 귀농이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아이들이 시골생활을 해보냐는 남편의 반강제적 권유가 컸지만 말이다.
주말에도 일을 했지만 가끔 쉬는 날엔 남편과 산에 올랐다. 운이 좋으면 버섯이나 고사리 혹은 뱀도 마주칠 때도 있었다. 어릴 때 뱀을 봤을 때는 징그럽긴 했는데 도망가지는 않았다. 발도 없는 게 잘도 기어간다 싶어서 신기하기만 했을 뿐. 나는 재빨리 긴 막대기를 들고 와 휘휘 뱀을 감아 들고서 남자아이들을 골려먹었다.
그날도 남편과 산에 올라 꽃뱀을 두 마리나 마주했다. '이걸 잡아서 팔아볼까' 그런 생각에 말리는 남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릴 때처럼 휙 잡아 검은 봉지에 넣어 여수 오동도 쪽 뱀 집으로 향했다. 주인은 곱상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뱀 두 마리 가져오자 신기했는지 만 원을 챙겨주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공돈~~ 앗싸!!' 평소 아이들에게 과자 한번 제대로 사준 적이 없는데 오늘은 큰 맘먹고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오른손에 들고 귀가했더니 아이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날 이후 '뱀은 돈이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문제의 그날도 갤*퍼를 타고 평소처럼 남편과 출근하던 길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밖을 보는데 도로변 옆에 길고 굵은 것이 시멘트 벽을 타고 오르려다 떨어지고 오르려다 떨어지는 게 아닌가?
"여보 차 세워"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은 남편을 뒤로한 채 나는 차 문을 박차고 나갔다. 가까이서 보니 전에 잡았던 꽃뱀보다 적어도 5배는 굵은 황토색 구렁이가 자신의 몸이 무거워 벽에 오르지도 못하고 그렇게 바닥을 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늦었어. 그냥 가자 가"
"아냐. 이거 가져가면 돈이라니까~ 트렁크에 봉지 있나 봐요. 어서"
남편은 그냥 두라며 빨리 가자고 했지만 잠시 망설이다 봉지를 찾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트렁크 뒷좌석에 보이는 건 누런 목장갑뿐이었다. '흠.. 어쩌지?' 그렇다고 저 녀석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일단 나는 목장갑 실을 풀었다. 남편에게 빨리 뱀 목을 좀 잡으라고 하고 목장갑 실을 돌돌 말아 뱀 목을 풀리지 않게 꽈악 돌돌 묶었다. 뱀은 굵은 몸을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반항했지만 애당초 놔줄 생각이 나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크고 긴 녀석을 차 안에 놓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놓쳐서 의자 밑구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리면 이도 저도 안될 것만 같았다.
번뜩 생각난 한 가지! 나는 차에 타서 일단 창문 밖에 구렁이 휙 던졌다. 그리고 뱀 목에 달린 목장갑 실을 꽉 잡고서 창문을 올렸다. '실을 단단히 묶었으니 장갑만 쥐고 바로 뱀탕집으로 가면 되겠지' 그렇게 나는 보조석에 앉아 창문 너머로 휘날리는 뱀과 가끔씩 눈을 마주치며 시골길을 달렸다. 어찌나 잘 달리는지 뱀도 바람을 느끼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런데 나는 한 가지를 망각하고 있었다. 시골길을 씽씽 달리던 차가 여수 시내로 들어가면 신호에 멈춘다는 것을...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빨간 불과 마주했다.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에 몸부림치며 꿈틀거리는 구렁이와 그 구렁이를 목장갑 줄로 매달고 있는 젊디 젊은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뒤이어 '으악'이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날따라 여수 시내로 들어서는 신호마다 차는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 아마 지금 같았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꺼내 인*타, 페*스북, 에 올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여수 시내 달리는 차 밖으로 구렁이 출현- 차에 선팅도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내 얼굴이 점점 토마토색과 비슷해져 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놓아버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겨우겨우 뱀 집에 도착했건만 오늘은 "쉬는 날" 결국 다른 뱀 집을 찾아야 했다.
"이거 얼마 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주인은 나를 아래 위로 쳐다보며 손가락 3개를 펴 보였다.
" 3천 원, 받기 싫으면 그냥 가지고 가던가..." 토마토 색으로 변했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걸 다시 들고 가느니 어서 빨리 뱀과 이별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내 얼굴에 절대로 다시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고 쓰여있었나 보다. 울며 겨자 먹기로 3천 원을 받고 뱀을 팔고 나오는데 어찌나 손이 아프던지...
'다시는 뱀을 잡지 않으리.~' 그날 이후 나는 시골길에서 뱀을 볼 때마다 쳐다보지도 않고 길을 피해 갔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퇴근하시며 커다란 과자 선물세트를 들고 오셨던 그날을... 태어나 처음 받아본 그 상자에는 짭짤하고 달콤한 과자들이 한가득이었다. 동생과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던 그날이 바로 엄마가 뱀 두 마리를 팔아 우리에게 사준 첫 과자 선물세트였다. 엄마는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 사주신 선물세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그 후 구렁이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말이다. 어쩐지 엄마가 동물원에 가면 뱀을 안 보려고 했던 이유가 그때의 트라우마가 아니었나 싶다.
가난을 옷처럼 입고 살던 시절. 엄마가 주신 과자 선물세트가 오늘따라 더 생각난다. 어린 엄마가 오직 아이들을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구렁이와 잡고 달렸을 그 길을 떠올려본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된 과자 선물세트. 엄마 고맙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