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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Feb 25. 2021

엄마가 되기 전 할머니가 된 여자.

- 사랑해. 이 말 밖엔...

"우리 애기 아직 자고 있는 거야?"

"웅. 어제저녁에 성장통에... 쌍코피에... 아주 그냥 내 혼을 쏙 빼놨지 모야."

"너 피곤한데 내가 전화를 했나 부네."

"에이~ 그런 말이 어딨어. 안 그래도 오늘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


휴대폰 너머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녀 곁에서 장난을 치고 있을 두 마리의 고양이 일 거라 여기며 우리는 통화를 이어나갔다. 밤새 쪽잠을 잔 나보다 더 고단해 보이는 그녀의 음성이 바늘처럼 내 심장을 콕콕 찔러댔다.


"고양이들 지금  놀고 있는 거야? 방울 소리 들려."

"웅. 요 녀석들 아니면 몸이 더 아플 것 같아. 곧 아들 2학년 올라가지? 인터넷 보니까 예쁜 옷들 있어서 몇 벌 보냈어. 등교할 때 입혀."

"뭐 그런 걸 보냈어. 있는 거 입혀서 보내면 되는데..."

"할머니가 손주 챙기는 거거 등. 내년에도 내가 새 옷 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데..."


꾹 참고 있었던 눈물이 또 왈칵 차올랐다. 나는 아들이 일어났다고, 조금 있다 전화를 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서둘러 휴대전화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말기 암 환자다. 처음 자궁암 수술을 받고 1년이 지났을 무렵 온몸에 퍼진 암덩어리를 마주했을 때, 놀란 자신보다 충격을 받을 가족들을 더 걱정했던 나의 막내 이모. 47이라는 나이를 말하지 않으면 이모의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가씨 같은 외모를 자랑했던 이모. 나는 그런 이모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이모는 4대 독자인 이모부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시댁에서는 손주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자연스럽게 생길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려 주셨다. 결혼한 지 10년이 가까워오고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에야 알았다. 두 사람을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많은 시도를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고, 단념을 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속앓이를 했던 것이 이모에게 병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나와 8살 차이 나는 막내 이모는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엄마가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는 같은 30대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른 한 사람은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했던 그때.


- 기지배야. 엄마 된 거 축하한다. 우리 애기가 애 낳느라 엄청 고생했지? -

- 이모 미안해. 이모가 엄마 되기 전에 할머니 만들어서...

- 그런 말이 어딨어. 그런데 30대 후반에 할머니 소리 들으니까 좀 그렇긴 하다. 여하튼 축하해.


이모의 축하 문자가 아직도 내 핸드폰에는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데, 엄마라는 이름 대신 할머니라는 이름을 선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까웠다.  나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한 번도 이모에게 "할머니"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대신 "이모이모"라는 호칭으로 아들은 이모를 부른다. 성장하는 동안 누구보다 내게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 사랑을 준 이모.


부스스한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한 아들이 붉어진 내 눈을 보며 걱정스레 얼굴을 가까이 댄다. 나는 이모에게 화상전화를 걸며 아이에게 폰을 넘겼다.


"이모이모~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좀 보여주세요."


한참을 이모는 고양이들에게 화면을 비추며 상황극을 목소리로 들여주었다. 아이는 폰 속으로 들어갈 만큼 푹 빠져서 눈을 반짝였다. 이모와 나의  30대는 부러움과 미안함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측은한 공기가 스며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몸은 멀어도 늘 마음은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 그 이상의 가족이다. 이제 우리는 곧 같은 40대를 걸어가게 된다. 부디 이모의 그 삐리리 한 병이 사라지고 50대 60대를 함께하고 싶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모이모" 부르며 달려가 안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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