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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y 05. 2021

어린이날 놀이동산 - 그 아픈 기억.

"내일 어린이날이죠. 엄마~ 우리 회전목마 타러 가요."

"그럴까? 그럼 내일을 위해서 빨리 자야지. 꿈속에서 미리 다녀오는 것도 좋고..."


아이는 두 눈을 꼭 감으며 금세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한참을 잠든 아이 곁에서 생각에 잠겼다. 아들이 생일 다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날. 갖고 싶은 선물과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그런 날. 5월 5일 어린이날.




25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놀이동산에 갔었다. 쉬는 날 없이 일하셨던 아빠는 점심 후 일이 마무리되어 우리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물으셨다. 어린이날이었기에 남동생과 나의 대답은 놀이동산 바로 그것이었다. 노란색 돼지 저금통이 우리를 위해 희생되었다. 갈라진 배에서 와르르 쏟아지던 동전들을 검은 비닐에 넣었다. 묵직한 비닐봉지가 무겁지도 않았는지 연신 우리는 차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빠께서 최근에 구입한 카메라도 챙겼다. 사방이 뚫린 형형색색의 기차를 타고서 놀이동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나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방방 뛰는 동생은 머리에 나사 두 개쯤 풀린 것 같았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은 체 그 뒤를 따랐다. 화단에 보이는 꽃들과 캐릭터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 얼굴보다 훨씬 큰 핑크색 솜사탕을 먹느라 정신이 팔린 꼬맹이가 내 곁을 지나갔다. 


동전으로 바꾼 1회 탑승권으로 tv에서만 보던 회전목마를 남동생과 나란히 올랐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말을 타고서 빙글빙글. 동생과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엄마와 사진을 찍어주시던 아빠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장난감이나 새 옷, 맛있는 음식도 그날의 내 기분과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꿈같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한 번 더 타고 싶은데 두 번은 안된다며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의 뒤를 우리는 졸졸 따랐다.


꽃들 앞에서 지나던 사람에게 가족사진을 부탁하며 우리 네 가족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때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행사 알림"소리가 들렸다. 중앙무대에서 피에로들이 풍선을 나눠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노래 경연이 있다는 안내였다. 다리가 아프다는 남동생을 목마 태운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있던 나는 인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우와 어쩜 저렇게 노래를 잘하지?' 그렇게 20여 분을 넋을 놓고 있었다.


"이제 놀이기구 탈래요. 엄마~"

"그래 그럼 내려갈까?"


공중 그네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카메라 매고 있지?"

"..." 


아빠가 분명히 내 목에 걸어주신 카메라. 하지만 그 묵직한 감각은 언제 잊힌 것인지 내 목은 솜털처럼 가벼웠다. 목이 아니라면 손에 들고 있어야 할 카메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멍한 내 눈에 당황한 엄마 표정이 겹치면서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연장으로 뛰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은 이내 흐릿해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공연에 빠져있을 때 뒤에서 가위로 끊어간 것 같네... 휴..."

순식간에 구름 위를 날던 기분은 땅으로 처참하게 추락했다. 공중 그네로 향하던 발걸음이 자연스레 집으로 향하면서 가족들은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동생과 나는 좀 더 놀이동산에 있자고 떼를 쓰지 못했다. 


'왜 하필 어린이날에... 첨 여기 와본 건데... 나 때문이야...' 부모님께서는 나를 탓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내가 무척 미웠다. 부모님과 내 눈치를 보던 남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그 후로 한 번도 놀이동산에 가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옆을 보니 아이는 여전히 행복하게 꿈나라 여행 중이었다. 매년 어린이날이 가까워 올 때마다 나는 '놀이동산'과 '카메라'를 생각한다. 기쁨과 상처가 함께했던 날. 나뿐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에게도 같은 상처로 자리 잡은 어린이날. 필름이라도 있었다면 그날 나와 동생이 회전목마를 타며 손을 흔들던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확인할 수 없었던 그 가족사진에서 젊은 엄마 아빠와 우리 남매는 얼마나 활짝 웃고 있었을까? 


이제 어린이날 그 아팠던 기억을 행복한 날로 덮어주려 한다.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핸드폰 카메라로 아이를 담으며 온전히 기쁨의 날로 기억 속에 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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