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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y 11. 2021

나는 한 번도 생일날 미역국을 먹어본 적이 없다.

브런치 1주년.

1년 중 가장 많이 끓이는 국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역국이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라서 이기도 하지만 친한 사람의 생일에 나는 미역국을 끓인다. 가까운 곳은 직접 가져다 주기도 하고 먼 지역이면 꽁꽁 얼려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가장 많이 끓이는 미역국을 정작 내 생일날에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엄마 나는 언제 태어났어요?"

"너랑 네 동생은 아주 더운 여름에 태어났어. 그래서 널 낳고 몰래 할머니 집 뒤편에 있는 개울에서 몸을 씻다 들켜서 엄청 혼났지. 너희들 낳고 정말 열심히 살았어. 엄마랑 아빠는..."

"아아~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


초등학교 시절 생일에 대해 처음 친구들에게 듣고서 엄마에게 물었을 때 엄마의 답변은 '매우 더운 여름날 고생' 그것이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너는 몇 월 며칠에 태어났어, 너를 낳았을 때 엄마는 무척 기뻤단다. 생일은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특별한 날이야.'와 같은 따뜻한 말을 기대했으나 기대는 기대일 뿐이었다. 우리집은 가난했기에 나는 엄마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했다. 평일같은 생일은 그 후로도 쭉 이어졌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생일은 조금 달라졌다. 나와 동생이 태어난 날이 사흘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중간의 날 하나를 잡아서 우리는 서로를 축하해줬다. 쇼핑몰을 돌면서 동생에게 어울리는 옷이나 시계를 선물하기도 하고 평소 보고 싶어 하던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다. 누가 보면 남매가 아니라 연인이 아닐까라고 착각할 만큼 좋았던 남매 사이는 동생이 결혼하면서 조금 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남동생과 나는 우리가 태어난 날 중간 지점에서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생일은 특별해졌다. 그날은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날이기에 매년 그날은 기쁜 마음으로 미역국을 끓인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어 하던 말을 아이에게 직접 말해준다.

"네가 태어난 날은 이날이야. 달력에 동그라미로 크게 그려놓은 그 날. 엄마는 너를 낳았을 때 무척 기뻤단다. 너와 엄마에게 이 날은 정말 특별한 날이야."라고...


2020년 5월 11일. 나는 또 다른 생일을 맞았다.

그것은 바로 브런치 작가로 태어난 날. 세 번째 도전에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브런치라는 섬을 가기 위해 배를 만들고 노를 저여 결국 그곳에 발을 디뎠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1년 동안 714,000 조회수, 630명의 구독자, 그리고 가슴 따뜻한 응원의 댓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직도 뭉클해진다. 


오늘 나는 브런치 돌이 되었다. 이 소중한 공간에서 오래오래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비록 진짜 생일날에는 미역국을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브런치 1주년이니만큼 담백하게 미역국을 끓인다. 


-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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