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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18. 2020

네가 왜 거기서 나와~ (1)

tv에 나온 그 녀석~

주말 아침. 

"레고 좀 정리해줘 밟으니까 너무 아프잖아.ㅠㅠ"

"엄마~ 잠깐만 이것만 보고요."

왔다 갔다 정신없이 청소기를 돌리는 와중에 아이는 tv에 집중하다 채널을 돌린다. 가끔 이렇게 인내심을 시험하는 아들의 대답!!  나는 더욱 열심히 청소기를 윙~~ 거리며 아들 앞을 지나갔다. 시끄러우면 끄겠지.^^;; 


"어? 잠깐~~ 저 녀석이 왜 저기 나와?"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이가 돌리는 채널에서 내가 아는 모습을 보는 건. 분명 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중3 아니 고1 때였나? 정말 오래되기도 했군. 그런데 어쩜 하나도 안 변하고 너는 그대로니~~'청소하다 말고 타임머신을 갈아탄다. 우리 둘의 기억의 교집합!! 그때로~~


6학년!! 섬마을 초등학교 그것도 한 학년에 한 반만 있던 작은 학교를 탈출해 전학 간 곳은 13반까지 있던 학교였다. 긴장한 내가 교탁에 서서 인사했을 때 모두들 서로의 눈치만 살피기 바빴다. 머리를 양 갈레로 정갈하게 따고 이리저리 눈만 굴리던 까만 소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촌스럽다. 


"향기는... 중간 저기 비어 있으니 오늘만 앉으면 되겠다. 반장 옆이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첫 짝꿍부터가 남학생이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시크하게 앞만 보는  남자아이. 학급의 반장인 그 아이와 나는 그렇게 첫 짝꿍이 되었다. '어차피 내일 짝이 바뀐다고 했으니~ 걱정 말자.' 쑥스러움에 하나도 물어보지도 못하고 무념무상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빠는 이곳에 함께 일하는 분의 식사 초대를 받았다며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고 10여 분쯤?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진한 녹색 대문!! 그리고 현관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돌계단. 귀여운 강아지까지~~ '우와~ 잘 사는 집이다.'라고 사방을 두리번거릴 때 문을 열고 나온 남자아이.

그랬다. 학교에서 본 그 녀석이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어?? 너... 우리 반?..."


우연이란 이럴 때 쓰나 보다. 교실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더니 왜 갑자기 친한 척~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 밥을 먹는 동안 대각선으로 앉아 나를 관찰하던 그 아이의 눈빛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반장의 아버지는 아빠와 같은 회사 직급이 높은 분이셨을까... 잘 사는 집 외동아들의 귀티가 난다더니 그래서였구나. 타르처럼 끈적한 기분이 들었고 이내 거부감이 밀려왔다. 이제 막 전학 간 학교에서 같은 회사에 다니는 부모님 때문에 혹여 놀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시골학교에서 워낙 힘들었기에 중학교 갈 때까지만이라도 조용히 살자 제발~ 나는 온몸으로 빌고 있었다. 


"잘 가~ 학교에서 보자"

".... 응~~"


"반장이라고 하더니 애가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고 참 괜찮네. 같은 반이라니 친하게 지내봐. 그래도 아예 모르는 친구들 있는 것보다 나으니까.."

내 속도 모르는 엄마^^;;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6학년 때 깨우친 진리는 이것이었으니 잔소리 폭격을 맞지 않는 데는 침묵만큼 좋은 것은 없다. 


다음날 아침. 왜인지 모르겠지만 바뀌지 않은 자리..ㅠㅠ 하아~ 밤새 걱정했는데 어제 자기 집에서 밥 먹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할까 싶었던 내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아이 역시 침묵했으니까... 대신 내게 시간표와 학급의 중요 내용, 그리고 조심해야 할 친구들까지 쪽지로 알려주는 따뜻함을 보여주었다. 

교실에서는 평소 말도 잘 안 하면서 수업 중 내 공책 귀퉁이에 그려놓은 스마일 표시의 낙서!!

'사귀는 여자 친구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한테 왜 이래? 반장 아버지께서 잘 챙겨주라고 하셨나? 울 엄마처럼 그리 말씀하셨을지도...'  그 후 비교적 평온하게 시간은 흘러갔다. 


3달쯤 지났을까 다시 그 아이 부모님의 식사 초대로 두 번째 방문한 반장의 집. 

오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거리더니 저녁이 되자 온몸이 불덩이다. 엄마는 저녁식사 후 약 먹으면 괜찮다고 했지만..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라 빨리 집에만 가고 싶었을 뿐. 어른들의 술자리는 길어지고 정말 울고 싶었다.


"향기 많이 아프니?? 침대에 좀 누워있으렴."

"아니요. 괜찮아요..ㅠㅠ(어찌 남학생 방 침대에 눕냐고요. 아니 되옵니다)"

"내방 깨끗하니까 누워있어도 돼. 아프다면서 그냥 말 좀 듣지?" 


남동생 방은 매일 내 맘대로 출입했지만 남학생 방은 생전 처음이었다.

한쪽 벽면에 크기가 다양한 책들.. 잘잘한 체크무늬 묶인 커튼, 나무 책상 옆 싱글 침대~ 커튼 색과 맞춘 감색 침구류가 잘 정리된 방에 엉거주춤 들어섰다. 

반강제로 침대에 새우처럼 누워 숨만 섹섹 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약기운이었으리라... 누가 내 이마를 만지는 느낌에 눈을 뜨니 반장이 내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 '뭐야 이거'

"너... 너무 뜨겁다. 이제 어른들 가신대~ 많이 아프면 내일 학교 오지 말고 쉬어. 선생님께 말씀드릴게"


남학생과 처음 해본 스킨십이 열을 재는 것이었다니... 비교적 순수했던 나는 쥐구멍이라고 숨고 싶었지만 손을 내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나는 많이 아팠으니까... 내일 학교에서 어떻게 보냐고~~ 걱정이 깊었는지 나는 다행히도 더 심하게 아팠고 이틀 학교를 가지 못했다. 


- 끝나고 건물 뒤로 나와 - 

수업 중 어디에선가 내게 날아든 쪽지!!


'그래 올 것이 왔다. 반장의 여자 친구의 호출~ 무슨 하이틴 연애소설도 아니고~ 나한테 왜? 이래서 내가 엮이기 싫었는데..ㅠㅠ 어휴...'

길기만 했던 수업이 끝나고 어두 컴컴한 건물 뒤쪽에서 원치 않았던 1 대 1 면담을 했다.


레이스 원피스에 누가 봐도 예쁜 소녀와 청바지에 부스스 촌스러운 여자아이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승자가 누구였을까? 1도 원치 않았던 그 만남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일로 인해 수업 시간 내게 스마일 표시 낙서를 했던, 내 온도를 걱정스레 체크했던 반장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으니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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