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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12. 2020

이제는 말하고 싶어.

나로 인해 다친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며...

"꼭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 용기를 내세요."


언젠가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용서를 빌 준비가 되어있다는 고백일 것이다. 나를 집어삼킨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 30년 가까이 된 이 고백이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려한다.


시내에서 큰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이 되었을 때 이사한 시골은 참 작고 아담했다. 작은 눈동자로 본 곳들마다 논밭이 가득했지만 차 타고 10분이면 어촌마을이 나오는 동네!! 다소 높은 곳에 있었던 국민학교에 오르면 멀리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보였던 더없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처음 그 학교에 전학 갔을 때 한 학년당 한 반뿐이었지만 사진을 보니 정확히 32명!! 지금 시골학교의 학생 수보다는 꽤 많은 수였다.

나를 날마다 놀리던 남학생도 있었지만 동네에 꼭 한 명씩 있다는 2% 부족한 여자아이도 나와 같은 반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왕따이자 은따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동안 밥풀이 달라붙은 누런 티셔츠, 비누로 씻으면 회색 국물이 쉼 없이 흐를 것 같은 얼굴과 손, 그리고 기름에 떡진 단발 헤어스타일. 옆에 오기만 해도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교 후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과 자치기 비석 치기 땅따먹기 할 때도 모두들 그 아이를 슬슬 피하기 바빴다.

"왜 너는 나만 따라오는 거야? 저리 가..." 꼭 내가 집에 갈 때 졸졸 따라왔던 그 아이는 "히히히~"하고 실없이 웃기만 했다.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었던 그 아이의 집!! 양철판을 대충 올려놓아 태풍이라도 한번 불면, 휙~ 하고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한 번도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고 마당에서 땅 파고 있는 그 아이만 문틈 사이로 빼꼼히 보였었다. 친구들은 아이의 부모님이 농사로 너무 바쁘셔서 그 앤 혼자다라고 이야기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동학대였다고 말하고 싶다.

감수성을 키워가며 우리는 3학년이 되었고, 여전히 그 아이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실실 웃었다. 이 정도면 거의 스토커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같은 반 남자아이처럼 나를 놀리거나 심한 장난을 친 건 아니었기에 따라오면 있는 힘껏 달리기만 했다. 한참 뛰다 뒤를 돌아보면 작아진 슬리퍼를 겨우 끌며 빠른 걸음으로 오다 신발이 휙 벗겨져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으니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있었다. 동네 가장자리에 몇백 년이 넘게 그 자리를 지켰을 상수리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비석이 놓여있었는데 어른들은 그곳을 '조산'이라 불렀다.
여름방학 끝자락. 남학생들은 그곳에서 개구리를 잡기 바빴고 여자애들은 토끼풀이며 진흙으로 소꿉장난하며 시간을 보냈을 때. 그날도 친구들과 점심 후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집을 나섰다. 부디 더러운 그 아이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들고 기분 좋게 조산을 향하고 있을 때 나를 부른 소리가 들린다. 그 아이다.ㅠㅠ

"야야~ 히히히~ 같이~ 가자~~ 히히히"
"싫어 저리 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다가 100미터 달리기로 전환되었다. 숨이 턱턱 1차선 도로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나였는데 순간...

끼익... 쿵~~~ 철퍼덕.....

사고였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내가 돌아봤을 때 그 아이는 차가운 도로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고 트럭에서 내린 아저씨는 급하게 도움을 청해왔다.
"이리 와봐라. 이 아이 아니? 혹시 집을 아니? 이를 어쩐다. "
"같은.... 반 이에요..."

모이기로 했던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가장 먼저 도착한 나.... 나는 혼자였다. 누구라도 저 아이 부모님께 이야기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집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여전히 비어있는 집.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두려움과 미안함 죄책감이 눈물이 되어 정신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내가 천천히 갔으면 사고는 안 났을 텐데... 왜 하필 뛰어서... 왜 그랬어.'

결국 아이의 부모님을 찾지 못하고 몇 시간을 아이 집 앞에서 펑펑 울기만 했던 나를 이모가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같은 반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어요.ㅠㅠ" 마음은 납덩어리 마냥 무거웠으나 부모님은 괜찮을 거라며 "네가 그런 거 아니잖아."라고만 하셨다. 이게 아닌데....

끔찍했던 방학이 끝나고 보여야 할 아이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론 생명에는 이상이 없으나 뇌를 심하게 다쳐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뿐 그 누구도 그 아이에 대해서 더 묻지도 답하지도 않은 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었다. 나만 빼고...


'다 저 때문이에요. 저를 따라오다가 사고가 난 거예요.' 깜깜한 밤이면 쏟아질 것 같은 별들보다 저승사자가 날 잡으러 올까 봐 겁이 질렸던 밤들이 점점 길어졌다. 학교 가는 길 잡초가 집어삼키는 아이의 집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도 새까만 잡초들이 무성히 도 돋아났다.

죄책감은 내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심하게 내성적이 된 것도 피 공포증이 생긴 것도 그 사고 이후부터였다. 이사가 결정되고 전학을 가야 하는 날. 마지막으로 본 그 아이가 살던 집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른이 된 이후 친구들을 통해서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뿐 달리 내가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을 때 아직도 가끔 그때의 사고를 꿈에서 본다. 그리고 용서를 비는 어린날의 내가 그 앞에 울고 있다.

불쌍하고 안쓰러운 아이. 누구의 관심도 사랑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소녀.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친구가 되어주었을 텐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가 비는 이 용서의 말이 바람결에 전해진다면 부디 용서해 주겠니~ 건강하길... 평생을 두고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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