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도시락과 급식을 떠올리며...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손을 잡고 하교하는 길이면 나는 꼭 질문을 던진다.
"오늘 점심은 어땠어?"
"맛있는 것도 있었고 맛없는 것도 있었고 그래도 1등으로 먹었어요."
"그랬구나. 천천히 먹지 이긍~"
질문에 대답한 아이는 저만치 달려가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던진다. 빨리오라며 손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말이다. 문득 내가 학창 시절 무척이나 싫어했던 시간. 그 날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점심시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그리워하는 시점이 비슷하다. 보통 부모님 그늘에서 철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말에 들뜬 표정으로 추억을 풀어놓는다. 그들에게 학교, 선생님, 친구, 교실, 도시락 혹은 급식, 매점 등 모든 단어들이 설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학교에 대한 잔상들은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질문을 거부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합이 12년. '돌아가느니 지금의 내 나이에서 12년을 더한 삶을 달라'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만큼 그 시절은 지우개로 힘을 주어 지우고 싶은 시간이었으니까...
시골학교에서 도시로 전학 온 이유가 엄마의 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황달에 점점 말라 가는 엄마가 이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기에 별일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치료를 위해 이사를 하고 아빠가 엄마의 간병을 위해 휴직을 하셨을 때도 전학 간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엄마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도시락이 필요했고 아빠는 엄마의 몸이 안 좋으니 내가 도와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야 심각성을 느꼈다.
중학교 때 일찍 일어나 텅 빈 냉장고에서 그나마 있는 김치를 반찬통에 담았다. 누렇게 변한 밥을 꼭꼭 눌러 넣어도 내 맘은 헛헛하기만 했다. 친구들이 기다렸던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들뜬 맘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어 보였다. 나는 부실한 반찬 뚜껑을 열기가 싫어서 내 자리에 앉아 혼자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대로 집에 들고 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 싫었던 내 소심한 성격 탓이었을 테다.
급식이면 좀 나을까? 빨리 시간이 지나길 바랐지만 중학교 3년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고등학생이 된 후, 급식 시설이 갖추어 있었기에 내 점심시간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내 기대는 얇은 유리잔처럼 쉽게 깨졌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상급식 지원이 있으니까 이야기하고, 관련 서류는 교무실로 와서 받아가도록해."
중학교 때보다 더 어려웠던 우리 집. 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얼굴색이 변하는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기가 죄스러웠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꼭꼭 접어 주머니에 넣고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쇳덩이를 발목에 찬 것처럼 무겁고 버거웠다. '무상급식대상이 되면 엄마가 기뻐할 테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께 가 신청을 했다.
"우리 반에서는 향기만 신청했네? 더 없어?"
하교 조회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에 교실에 모든 눈이 나를 향했다. '제 어렵나 봐 쯧쯧' 동정 어린 시선과 귓속말들이 들리는 듯해 얼굴이 화끈거리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왜 당당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17살. 나는 감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소녀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못내 괜찮은 척 집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잘 신청했다고 졸업 때까지 해택을 받으면 좋겠다고 웃으셨다. 내 마음은 반대였는데 말이다. 어서 형편이 좋아져서 제 돈을 내고 급식을 먹을 수 있길... 그날이 오기를...
점심시간...
"야~ 너 공짜 급식 먹으니까 좋냐?" 방어태세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픽 웃으며 피할 수도 있었으련만 급식소로 향하는 길에 들은 같은 반 아이의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혔다.
"너 되게 가난한가 보다. ^^" 이런 말을 듣고 밥이 소화가 잘 될 리가 있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빨리 집에 가고만 싶었다.
차라리 도시락이 나을 뻔했다. 좋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오지 않길 바랐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내가 혜택을 받는 꼴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늘 가장 먼저 교실문을 열고 교무실에 출석부를 가져다 놓는 내가 담임 선생님의 예쁨을 받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물려받은 헐렁한 교복이 누가 봐도 무시해도 될만한 아이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물어보지 못했기에 알 길이 없는 그 시절.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신경성 위염과 천식으로 점심이 되기 전 조퇴를 하곤 했으니까~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취업을 나가기 전까지 해택을 꾸준히 받았다. 학교에서 왕따로 놀림도 많이 당했지만 집에서라도 걱정을 덜 끼쳤으니 다행이었을까?
졸업 후 남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난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마음은 편했다. 참 신기하게 회사에서 내 돈 주고 먹는 밥은 행복감을 주었다. 동료들과 먹는 점심이 꿀맛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다행히 위염도 천식도 학교를 졸업하면서 함께 졸업했으니까...
점심시간이 싫었다.
내 마음을 아프게만 했던 학교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실제로 직장생활과 육아를 했던 시간 동안은 잊고 살았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내 기억 속 학창 시절이 다시 되살아난다. 잔혹한 흑역사가 아이에게 그대로 대물림될까 봐 여린 아들이 똑같은 일을 겪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나에게서 끝난 일이야. 아이에게 그런 일은 없어. 그리고 지금 잘 적응하고 있잖아.'라고 불안한 나를 다독인다.
엄마의 이 마음을 아이는 알고 있을까?
"엄마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냥 하는 말이 내게는 위로로 다가온다. 옛 기억으로 굳어졌던 내 얼굴이 이내 환해진다.
"우리 주말 점심엔 맛있는 거 먹자 엄마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엄마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