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내가 이젠 엄마를 이해합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ㅜㅜ
남동생은 펑펑 울며 빌기 시작했다. 맷집이 좋았던 나는 고집 새게 목구멍으로 "잘못했어요."이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등 뒤의 남동생을 막아선 채 우두커니... 낡고 파란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화가 잔뜩 난 엄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그때 나는 7살 남동생은 5살이었다.
요즘 아동학대 관련 뉴스를 보면서 아들을 키우기에 더 가슴이 미어진다. 올해 8살인 아들에게 한 번도 매를 때린 적도 큰소리를 내며 윽박지른 적도 없었기에 모니터를 통해 보는 학대 사진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거짓말을 했으면 얼마나 큰 거짓말을 했으고 말을 안 들었으면 얼마나 안 들었기에 불로 지지고 때리고 묶고 가둘 수 있었을까?
작은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나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남매를 낳고 가난에 찌들어 고생했던 부모님~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주인집에 딸린 단칸방에서 월세로 네 가족이 함께 살았다. 부유한 주인집 아들과 동갑이었던 나는 아침이면 말끔하게 입고 유치원에 가는 그 아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다행히 남동생과 마당에서 심심하면 돌 쌓기도 하고 작은 도랑물에 모래를 던지기도 하면서 놀았던 것 같다. 너무 어렸기에 기억의 단면만 있는 그 집. 우리는 자주 이사를 해야 했기에 집마다 추억은 짧았다.
작은 오토바이 앞에 나를 태운 아빠 그 뒤에 동생을 안고 탄 엄마. 간단한 짐과 함께 내가 7살 무렵 큰 목욕탕이 딸린 반지하 방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작은방. 마당이 없어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집. 2층으로 가면 주인집이 있었는데 그곳엔 비교적 넓은 테라스와 꽃나무들이 어여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인자함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인상의 주인아주머니.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눈으로 우리를 그리고 날 쏘아보던 그 눈동자를 기억하는 걸 보면 지금 만나도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분명 같은 건물인데도 우리 집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두 집을 보면서 어린 나이지만 왜 우리는 좋은 집에서 살 수 없는지 가끔 엄마에게 물었었다. 그때마다 30이 안된 엄마의 침묵하셨고 왠지 모르게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밖에 없겠구나 예감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께서 동생과 나를 두고 일을 하러 가시면 우리는 놀거리가 없어 몸부림쳤다. 낮인데도 어두운 집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5살 남동생을 내가 어떻게 다 커버한단 말인가. 야심 차게 슬리퍼를 신고 주인집으로 가는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캄캄한 지옥에서 밝은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처럼 동생의 손을 꼭 잡고서 계단을 내디뎠다. 아무 소리가 없는 걸 보니 무서운 주인집 아주머니는 부재중이신듯했다. 그냥 잠깐 꽃들만 구경하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마당에서 놀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남동생은 화분에 있는 흙을 손으로 퍼다가 널찍한 곳에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에서 답답하게 있는 것보다 잠깐만 놀고 다시 정리하면 되겠지라는 짧은 생각으로 나도 옆에 앉아 놀이에 집중했다. 작은 잎을 따다 소꿉놀이를 하고 꽃을 따 데코를 하고... 신이 난 동생은 "잘한다 이쁘다"하면서 웃어 보였다. 동생이 선반에 놓여있던 예쁜 화분을 작은 손을 뻗어 내리는 순간 "와장창~~"ㅠㅠ 아뿔싸~~
나는 너무 놀란 마음에 깨진 화분과 흙을 손으로 긁어모으며 손이 다치는 것도 잊어버렸다. 남동생은 그제야 내 눈치를 보더니 "오또케 ㅜㅜ" 아아... 주위를 보니 우리는 노는데 정신이 팔려 많이도 어질러 놓았다. 단정하고 예뻤던 공간은 흙으로 난장판 이라니... 큰일 났다. 엄마가 많이 화내실 텐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먼저 올라오셔서 언성을 높이셨다. 어떤 말로 혼내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많이 화가 나셔서 나와 동생을 몰아붙이셨고 일을 마치고 온 엄마는 큰소리에 2층으로 올라와 우리가 어지른 화분들을 급하게 치우셨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땅을 보고 조아린 긴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선 우리에게 빗자루를 들고 와 허벅지를 때리면서 "잘못했다"라고 말하라며 화를 내셨다. 겁나고 무서운 마음, 내 말을 먼저 듣지 않는 엄마를 향한 분노로 나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울며불며 잘못했다고 한 동생은 매를 면했지만 나는 대신 매타작을 당했다.
그날 저녁 퍼렇게 멍이 든 허벅지며 팔에 엄마께서 연고를 발라 주실 때 나는 내가 잘못했음을... 다시는 주인집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속상한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되어보니 왜 그날 빗자루를 들고 와 주인집 아주머니 앞에서 보란 듯이 화를 내셨는지 알 것만 같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보다 자신의 처지가 고통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엄마도 주인아주머니가 무서웠을 거다. 겨우겨우 이사 온 집에서 낮이면 밖에서 아빠와 일하고 저녁이면 목욕탕 청소까지 도맡아 한 엄마였기에... 빗자루를 휘둘러 때린 내 몸에 파란 자국을 보며 마음엔 피멍이 들었을 엄마.
엄마도 나도 너무 어렸다. 그땐... 그땐...
"엄마~ 뉴스 봤어요? 어쩜 어린아이를 저렇게 학대할 수 있을까? ㅜㅜ"
"그러게 말이다. 무슨 천벌을 받으려고..."
"엄마도 나 어릴 때 많이 때렸잖아요. 지금 손주보다 더 어렸었는데..."
"그땐 멋모르고 그랬지. 미안해... 그런데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니?"
"아니 엄마~ 내가 엄마가 되니까 엄마 맘 알 것 같아. 내가 미안해요."
엄마의 매는 학대가 아니었다. 엄마의 매는 상처, 힘듦, 고단함, 아픔이 서글프게 뒤섞인 감정이었고 엄마의 눈 가득 후회의 빛이 어려있었으니까...
속상했던 그날의 어린 엄마를 엄마가 된 내가 꼭 안아준다.
오늘,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