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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지 못한 장수풍뎅이.

아이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by fragancia

"엄마 나는 정말 뭐라도 키워야겠어요. 꼭이요."

"좀 더 크면 네가 좋아하는 동물 키우게 해 줄게 지금은 너무 어려서 잘 보살펴 줄 수가 없잖아."


평소 때를 부리지 않는 아이건만 완강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들을 위해 뭔가 키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고기, 식용 달팽이, 올챙이, 거북이. 비교적 작은 생물들이 아이의 성장과 함께 집에 방문했다가 사라졌다.


이젠 집에서 키우는 건 잘 죽지 않는 다육이 하나로 잠정 타협을 봤지만 아이는 뭔가를 키우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그러던 중 예기치 않게 곤충 박람회에서 "장수풍뎅이 유충"을 공짜로 받게 된 아들.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녀석이 나는 너무 징그러워 쳐다보기도 힘들었는데 아이는 손바닥에 올려놓고 친히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뿌리" 멋진 뿔이 예쁘게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 누워있는 엄마보다 거실에 있는 장수풍뎅이 유충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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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 뿌리는 금방 뿔이 나오겠죠? 얼마나 멋있을까요?"

"엄마엄마~ 뿌리 변하면 암컷도 대려와야겠어요. 둘이 짝짓기 하면 우리 집에 장수풍뎅이가 많아지겠죠?"


속으로는 끔찍했지만 아이의 웃는 모습에 삐질삐질 땀만 흘리며 나는 "그래...."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장수 풍뎅이니까 장수하겠지... 에효...'


그렇게 커다란 유충이 집에 온 지 2주 되었을 무렵 이상한 형태로 번데기가 되었다. 식구가 된 지 이렇게 빨리 번데기가 되다니~ 검색 결과 절대 만지지 말아야 한다기에 아이는 투명한 번데기가 점점 갈색빛을 보일 때까지 곁에서 노래도 불러주고 동화도 틀어주고... 이런 지극정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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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가 된 지 3주가 지날 즈음.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흥분상태로 내 손을 이끌었다.

"엄마 뿌리가 뿌리가 있죠~~ 껍질을 뚫고 나왔어요.. 우와 우와..."

거실로 나와보니 아이가 말한 대로 탈피를 한 장수풍뎅이는 성충이 되어 내 앞에 있었다.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행복했기에 징그러웠지만 며칠 후 암컷을 마트에서 구입해왔다. 아이는 암컷 이름을 "땅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장수풍뎅이는 장수할 것이라고 생각과는 다르게 두 마리 모두 2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수컷이 먼저 죽더니 암컷이 따라 죽었다. 전에 키우던 것(?)들을 다른 곳으로 보낼 때의 느낌과는 달랐다. 아들은 애정을 준 아이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장수풍뎅이 통에 붙어있었다.


"엄마 이제 장수풍뎅이 못 만나는 거예요? 이제 땅에 들어가면 흙이 되는 거예요? ㅜㅜ"

아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멍하게 움직임이 없는 아이들을 꺼내었다. 그리고선 까만 색종이 두장으로 상자를 만들어 두 마리를 넣고 공원에 가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잘 묻어주고 돌아오는 길... 마음 아파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보고 싶어도 더는 못 만나는 거요. ㅠㅠ 그래서 많이 슬픈 거요."


나는 아이에게 하늘나라를 말하지 않았다. 내가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도 했지만 죽음 자체로 아이가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생명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걸~ 아이는 장수풍뎅이를 보내고 나서야 죽음을 이해했다. 그 후 뉴스에서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 아이의 태도는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가족들이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요~?"

"그래서 숨 쉬는 동안 가치 있게 살아야 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안아주고 좋은 일도 더 많이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즐겁게... 엄마 말 알지?"


"죽음"을 생각하며 아이는 자기 앞의 생을 잘 살면 된다고... 장수하지 못한 장수풍뎅이를 보내며 모자는 한동안 그렇게 포옥 안겨있었다. 안녕 뿌리야... 안녕 땅이야. (장수풍뎅이 평균 수명은 3~5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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