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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15. 2020

내 안에서 숨 쉬는 당신의 "고뇌"

로맹 가리 - 솔로몬 왕의 고뇌를 읽고...

-자기 앞의 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가면의 생, 로맹 가리 - 4권의 책을 읽고 만난 그의 생의 마지막 책 "솔로몬 왕의 고뇌" 나는 무려 5개월 동안 이 작가와 만나왔다.

내가 만난 첫 책이 '자기 앞의 생'의 모모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다음 책들을 넘겨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호기심과 작가에 대한 갈증이었다. 왜 그가 본명을 두고 -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이렇게도 탁월한 문체들로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는지, 물음표가 느낌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그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갔다. 

솔로몬 왕의 고뇌. -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솔로몬 씨는 '기성복의 제왕'으로 '우정의 구조회'라는 단체를 통해 소외된 독거노인들을 보살핀다. 갈 곳이라고는 이제 저세상뿐인 사람들의 심적 고통을 들어주고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소설 초반에 이런 위대한 솔로몬 왕께서 주인공 25세인 "장"을 만난다. 그것도 택시 운전사와 손님으로...

솔로몬 씨에게 고용된 장은 그가 부탁하는 일들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비서 역할을 한다. 그는 노인들에게 구원자인  솔로몬 씨를  존경하고 동경하는 동시에 솔로몬 씨가 겪고 있는 고뇌의 깊이를 가늠해 보기 시작한다. 35년 간이라는 세월 동안 원망의 대상이었던 마드모아젤 코라를 장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와 엮이게 될 상황들을 짐작이나 했을까?

25세 청년 "장",  샹송 가수였던 65세 "코라", 그리고 고뇌에 찬 85세 솔로몬 왕~ 어떻게 나이를 이렇게 설정해 놓을 수 있었을까?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20~80대까지 나이를 초월한 기묘한 삼각관계는 소설에 몰입감을 더한다. 


주인공인 "장"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의 길을 걸으며  사전에 집착한다.  명사와 동사의 뜻을 찾는 모습은 삶의 의미를 "언어"에서 찾으려고 애쓰는 그의 내적 갈망을 대표한다. 더불어 사랑하고 존경하는 솔로몬 씨와 개인적인 사랑이 아닌 보편적인 사랑이었던 코라와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사전"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랑할 만하지 않은 사람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지. 지금은 나 역시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하지만 사랑은 이해하는 게 아니야. 그냥 그런 거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계산이 가능한 게 아닌 거야.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바보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계산을 해본 적이 없어. 인생을 샹송처럼 살았어. 사람이 젊을 때에는, 언젠가 늙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법이야. 너무 먼 미래의 얘기거든.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야. - 마드무아젤 코라. 278p 


많은 장면들이 떠오르지만 코라가 주인공 "장"에게 했던 이 말이 나는 인상적이었다.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솔로몬 왕의 고뇌"에서는 사랑이란 이해하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상황과 장면들이 예측하기 힘들 만큼 극적 요소들을 로맹 가리는 소설을 통해 잘 배치해 놓았다. 시대적 배경, 나이와 인종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할 노쇠와 죽음. 꽤나 무거운 주제를 그만의 방식으로 가볍지만 진지하게 풀어나갔다.


자기 앞의 생의 어린 모모가 25살 장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 로맹 가리의 삶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글의 힘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는 위대한 작가임을 -솔로몬 왕의 고뇌-라는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노년의 삶, 사랑과 죽음에 대한 그의 고뇌가 내 안에서 숨 쉬었으며 오래 머물 것임을...

새벽녘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며 나는 솔로몬 왕을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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