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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y 11. 2020

2억의 진실

첫 직장 생활의 살 떨리는 경험

대단한 우리 아빠!! 가족도 안 선다는 보증을 재정부 장관인 엄마에게 상의도 없이 덜컥 선 덕분에 우리 집엔 빨간딱지가 붙여졌다. 내가 아끼던 피아노며 컴퓨터, 온갖 가전제품까지... 이런 건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이 아닌가 싶어 눈 비비고 집에 들어섰던 그날을 기억한다.  붙어있는 빨간딱지보다 예고를 준비하며 꿈을 키우던 내게 이제 집을 위해 취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아리고 아플 수가 없었던 중3 시절!! 



생각보다 포기는 빨랐다. '그래 미대 못 갈 거면 내가 벌어서 가지 뭐~~' 

왕따에 성추행에 아주 심란했던 고등학교 생활의 막바지 고3 1학기 첫 직장은 2개의 건설회사의 경리 보조로 단기 계약직이었다.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의 공고가 늦게 뜬다는 소식에 학교에 있기 싫었던 나는 실무 경험을 쌓는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모르고 험난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여직원은 단 한 명 10년 이상 두 회사를 맡아온 경리 언니의 포스는 실로 대단했으니 웬만한 현장 직원보다 술이 3배는 센듯했고 혹여 전화로 귓가에 콕콕 박히는 거친 말에도 내공 100단의 욕으로 받아치는 그 모습에 눈만 깜박깜박거리던 19살 실무보조~~ 그렇게 2개월 정도 험난했으나 경리 언니의 포스에 가려 큰 문제없이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 언니의 몸살감기로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 큰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하도급 업체에 보내야 하는 공사대금을 은행에 가서 보내라는 결재가 떨어져 업체 경리와 통화를 하고 은행에 들러 송금한 금액은 2억~~

큰돈이 오고 갔지만 간단한 송금이었기에 은행에서 휘리릭 보내고 아무 생각 없이 바나나우유를 빨며 회사 문을 열었건만~ 대리님이 부르신다. 

"향기 씨 송금 안 했어??"

"아니~ 했는데요~^-^ 해맑음"

"엉?? 그런데 안 왔다고 방금 업체에서 전화 왔잖아. 확인해봐."

- 참고로 나는 핸드폰을 21살 때 구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2억을 받지 않았다는 연락... 이거 뭐야?? 송금 내역 확인서는 어디에 두고 나는 해맑게 바나나 우유만 빨고 왔던가!! 그때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리님 호출, 실장님 호출, 과장님, 부장님, 이사님~~ 사장님까지~~ㅠㅠ 평소 잘 뵙지도 못하는 분들을 송금 건 때문에 불려 가고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냐며 회사가 장난이냐고 깨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실장님께서 일단 계좌 정지부터 시키라는 말씀에 새파랗게 질린 채로 은행으로 달려가 계좌를 정지시켰다.  은행 직원은 몇 시간 후 그 계좌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해 주기로 약속을 받은 뒤 회사로 복귀...

그나마 다행인 건 받은 계좌에서 돈이 나가지 않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을 때 업체 경리가 전화가 왔다. 얼마나 심하게 욕을 하던지...ㅠㅠ 손발이 떨리고 등에서는 땀이 줄줄... 어떻게 흘러간지도 모른 체 오후 4시가 되었다.



'돈 벌어서 미대는커녕 2억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부모님에게 어찌 말해야 좋지?~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겠구나.' 별별 생각이 들어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 은행입니다. 그 계좌 학생 계좌네요. **중학교...*** 이름으로 나오는데~~"

"네 감사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계좌 정지가 전부 인 가요?"

"그 학생하고 연락을 해봐야겠지요. 연락처는..."



100번째 한숨 '하아... ' 업체 경리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무서워서 목소리는 떨렸지만 할 일은 해야 할 터...


"저기... 중학생 계좌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학교래요.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

"일단 제가 연락을 해서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도록 할게요."

"....."

"어쩜 좋아.~~ 미안해요 아가씨!! 우리 아들 계좌네. 내가 있지. 정신없이 은행에서 회사일이랑 아이한테 송금할 게 있어서 아침에 아가씨가 계좌 물어볼 때 회사 계좌인 줄 알고 불러준 게 아들 계좌였네.. 어쩌나..."


'이런 ***********'  차마 언니처럼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너무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ㅠㅠ ' 안도의 눈물만 흘렸을 뿐 대신 다음날 출근한 언니가 시원하게 그 경리와 맞짱을 떠줬기에 사건을 일단락되었다.


오전에 송금한 그 일로 오후까지 거의 지옥을 오갔던 나. 그 이후 은행 송금과 관련해서는 2번 3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다른 회사에 입사해 10년을 근무하면서도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회 초년생 2억이 내게 준 값진 교훈!! 내 잘못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꼭 확인은 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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