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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25. 2020

500원, 20분 투자!! 셀프 네일.

매년 여름이면 봉숭아 물을 들인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 아파트 화단에는 분홍, 하얀 꽃들이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는 이 꽃을 보니 연례행사로 매년 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코로나로 까맣게 잊고 지냈었다.


"주말에 우리 재미있는 거 할까?"

"뭐예요 엄마?"

"뭐긴 뭐야~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려고"

시골에서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면서 매년 여름이면 친구들과 함께 봉숭아 물을 들였다. 오후에 화단에 있는 봉수아 잎과 꽃을 따 백반을 넣어 아랫집 뒷집 친구들과 앉아 서로의 손톱에 묶어주었던 그때.


"내일 학교에서 누가 더 예쁘게 물 들었는지 보게... 응?" 


예쁜 손톱을 기대하며 가려운 곳도 긁지 못하고 선잠에서 깬 아침은 예쁜 빨강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매번 김칫국물이 밴 열개의 손가락들이 나를 반겼다. 연주황 쭈굴쭈굴한 손가락들~ 친구들은 진한 빨강이었는데 왜 나만 연주황이었는지 크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손에 땀이 많은 아이여서 그랬다는 걸...

연한 빛이더라도 하루 이틀 손톱깎기에 잘려 하얀 손톱이 올라오는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봉숭아가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결혼 전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의 추억을 소환하며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름이면 봉숭아 물을 들이곤 했다.


그런데 웬걸? 몇 년 전에 팬시점에 갔다가 신기한 가루를 발견했으니 그것은 "봉숭아 물들이기 가루" 분홍색 플라스틱 두 개가 든 봉투는 단돈 1,000원. '이거다 이거~ 더 이상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 꽃잎을 딸일도 백반 대신 굵은소금을 넣을 일도, 꽉 묶인 손톱 때문에 밤새 불편할 일도 없는~ 눈빛이 빛났다.


단돈 500원, 20분 투자로 손톱을 물들일 수 있다니~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구매해 집에서 시도해봤다. 고운 가루에서는 봉숭아를 빻았을 때의 향이 그대로 났고 물을 걸쭉하게 섞어 손톱에 올려놓았다. 10개의 손톱이 까만색으로 마치 손톱 멍이 든 것 마냥 이상했지만 20분이면 된다. 20분!! 남은 양이 많아 주저 없이 발톱에도 발랐다. 서서히 굳어가는 거무티티한 액체~


20분이 지난 후 물로 깨끗하게 씻었다. 이것은 꿈인가? 한 번도 이렇게 진한 색이었던 적은 없었다. 원하고 원했던 다홍빛 손톱과 발톱이 20분의 기다림으로 완성되었다.  "이야~~"

옆 동에 사는 올케가 네일아트를 잘해서 나에게도 몇 번 해주었지만 주부가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예쁜 네일은 오래갈 수 없었다. 큰 맘먹고 젤 네일을 해보았으나 벗겨지면서 손톱이 많이 손상되었고 회복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 후 네일은 나와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제는 20분 투자로 한 달을 네일 효과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과 함께 하려 했지만 학교 친구들이 놀릴 거라며 저만치 나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 아들에게 20분만 참아달라고 부탁한 뒤 오늘 오전 손톱과 발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오래전 봉숭아 잎과 꽃잎을 따다 옆집 뒷집 친구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내기했던 그때의 추억이 붉은 손톱을 보니 고스란히 떠오른다. 그 아이들도 여름이면 봉숭아 물들였던 그 날을 떠올릴까?


어쩌면 나처럼 봉숭아 가루로 어린날을 추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날의 친구들이 보고 싶은 주말.

500원, 20분 만에 추억 소환!!

예쁜 나만의 네일도 완성~ 

오늘 붉게 물든 내 손톱과 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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