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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11. 2020

딸보다 나은 며느리.

하나뿐인 올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누나~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여자야. 도와줘"

"하... 너 아직 어려. 부모님은 어쩌고..."

"그러니까 누나가 도와줘 응? 믿는 구석이 누나밖에 없어 나..."


남동생이 첫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23살 내 눈에 항상 어리게만 보였던 녀석에게 여자 친구이라니... 어릴 땐 많이 다투었지만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남동생이 대학을 다니면서 더 가까워졌다. 퇴근시간에 맞춰 남동생이 나를 데리러 오면 영화도 보고 밥도 먹으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이좋은 남매로 유명했던 우리. 그런 남동생이 사랑하는 여자라니 궁금하기도 했지만 못내 서운하기도 했다.


남동생의 여자 친구는 엄마 친구의 딸인 지금의 올케. 상대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가족들은 모두 멘붕이었다. 싹싹함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웠던 표정 때문이었을까? 아직 어리니 사귀다 헤어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남동생의 목적은 단 하나 "결혼".  어리기만 했던 남동생은 24에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했다.


중학교 때부터 안면은 있었지만 이제 가족이 되었으니 올케가 불편할까 봐 우리 가족은 조심했다. 시집살이는 절대 노노~ "남동생이 행복하려면 며느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엄마와 매번 강조하며 서로 조금씩 편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문제없이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예뻤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걸로 된 거라고...

작년 초여름이었다. 친정아빠가 고혈압과 뇌경색으로 급히 대학병원으로 실려가셨다. 떨어지지 않는 혈압도 문제였지만 병실이 나오지 않아 4일을 응급실에서 지내야 했다. 경황이 없는 엄마를 대신해 남동생은 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응급실에서 아빠 옆을 지켰다.


엄마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셨다. 애처가인 아빠의 빈자리가 엄마에겐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나는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손주가 아프다는 핑계로 아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딸 키워 봤자 아무것도 아니구나. 죄송함에 엄마에게 직접 전화하지 못하고 동생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빠는 좀 어떠셔? 엄마만 집에 혼자 계셔서 내 맘이 너무 안 좋아."

"누나 걱정 마. 지금 와이프가 엄마 집에 간다고 짐 싸서 나갔어. 넓은 집에 혼자 계시면 많이 우실 것 같다고..."

"정말? 올케가? 그러기 힘들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엄마 감동받으셨어."


한 번도 올케에게 무엇인가 바란 적이 없던 나는 갑작스러운 올케의 행동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쩜 시어머니 집에서 단둘이 밤을 지새우기로 마음을 먹은 걸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언니~ 어머님 걱정 말아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너무 고마워..ㅠㅠ 정말 딸보다 며느리네. 엄마 잘 부탁해."


늘 조용하고 표현하지 않았던 올케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진 그 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좀 더 끈끈해졌고 긴 아빠의 재활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시아버지께서 병상에 계시고 시어머니 혼자 시라면 바로 짐을 챙겨 갈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올케~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게"

"아니 언니 괜찮아요.^^ 다음에 만나면 우리 고기 먹어요."

'고마워~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올케는 딸보다 나은 며느리야.' 전하지 못한 진심을 두고두고 곁에서 베풀어주려 한다. 올케가 힘들 때 곁에서 시누이라는 이름이 아닌 든든한 언니로 있어주겠노라고 그날 나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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