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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15. 2020

오직 나만을 위한 축제.

남편 : "자기는 나 보면 그 질문밖에 할 말이 없어요?"

나 : "무슨 질문이요?"

남편 : "뭐 먹고 싶냐는 질문!! 하루에 몇 번을 물어보는지... 내가 요기요는 아니잖아~."

나 : "아아. ;;"


남편이 쉬는 주말 아침. 오늘도 나는 냉장고를 열어보며 눈으로 음식재료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등 뒤로 물을 마시러 온 남편에게 무의식적으로 질문을 한 모양이다. 그것은 "오늘은 뭐 먹고 싶어요?". 막상 지적을 당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엄마이자 아내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는 가족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주부로서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막상 나는 먹는 것에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다. 먹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내가 육아맘이 되면서 180도로 달라졌다. 음식을 먹는다기 보다 목구멍으로 밀어 넣기 바빴다. 한시도 나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 덕분에 남은 음식을 후다닥 입에 가득 넣고 대충 씹어 물과 함께 꿀꺽.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배만 부르면 그만이었다. 


아이가 좀 더 자랐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 9년 차. 어느덧 나는 밥만 차리는 여자가 되어있었다.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펴고서 끄적끄적 낙서를 해본다. '이게 아닌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뭐였지? 왜 자꾸 남편과 아이의 입맛에 맞추고 있는 걸까? 누가 정말 나 좀 챙겨주면 좋겠다.'




문득 직장 생활을 할 때, 직장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려 보았다. 점심식사 메뉴를 고르며 깔깔거렸던 모습들, 각각 비빔밥 재료들을 가지고와 큰 양푼에 비벼먹었던 일, 9층 매점에 가서 사 먹었던 크림빵, 아~ 먹는 것의 즐거움 덕분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챙겨 먹으며 행복감에 도취되었다. 행복하게도 그때는 나를 챙겨주는 소중한 가족이 함께였다.


"우리 딸~ 뭐 먹고 싶어?"

"저 찐빵이오."

"찐빵? 알았어. 사갈게"


흰 봉지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찐빵. 아빠가 사 오신 찐빵을 맛있게 먹었지만 그땐 그 고마움을 몰랐었다. 엄마와 남동생에게 묻지 않고 나에게만 물었다는 것도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찐빵가게를 가기 위해 집과는 반대쪽으로 걸으셨어야 했던 발걸음, 눈길에 손을 호호 불었을 아빠의 입김,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빠의 뿌해진 안경과 빨간 손보다 나는 찐빵에 먼저 눈이 갔었다. 내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셨던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떠올라 코끝이 찡해왔다.




결혼 후 나의 예전 삶을 망각하며 지냈다. 이제는 매일 가족의 입맛을 따라가기보다 음식의 선택에서도 가끔씩 이기적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먹는 즐거움도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복 아니겠는가. 남편에게 "무엇이 먹고 싶나요?"라는 질문 대신 "나 오늘 빵 먹고 싶어요. 사줄 수 있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평소 뭘 사서 오라는 말을 잘 안 하는 내가 신기했는지 남편은 빵을 한 아름 안고 퇴근을 했고 우리 가족은 그날 빵 파티를 열었다.


아침이면 대충 아이가 남긴 음식 대신 나만을 위해 준비한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야채, 담백한 닭 가슴살, 고소한 견과류를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 맛을 음미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빵 한 조각도 입에 넣는다. 평소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빨리 먹기에 급급했던 내가 고독한 미식기가 된다. 시각 미각 후각에 온전히 집중해보는 시간.

이 모든 음식이 나를 위한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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