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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05. 2020

이국땅에서 길을 잃는다면...

나는 이 날을 위해 수어를 익혔나 보다. 

사방이 막혀있는 정사각형의 방. 그곳에 갇혀있는 꿈을 자주 꾼다. 큐브 영화를 본 후 충격이 컸던 탓이었다. 죽음이 압박해 오는 공간 방에는 8개의 다른 큐브로 가는 문이 있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가만히 있다가 죽을 것인가? 모험을 해볼 것인가?


사방이 막혀있는 공간에서의 선택보다 글쓰기 주제는 그나마 덜 두렵다. 낯선 땅,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나는 지금 그곳에 있다. 전혀 모르는 곳이라고 봤을 때 나는 사막과 인접해 있는 인도 어느 시골마을을 떠올렸다. 


쩍쩍 갈라져있는 바닥, 이글 거리는 눈앞으로  모래바람도 불고 있다. 100m 앞에 무채색의 낮은 건물 몇 채가 보일 뿐 사람은 없는 유령마을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낡아빠진 샌들을 끌며 걸었다. 그때 문틈 사이로 커다란 눈이 반짝인다. 내가 "저기요"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황급히 문이 닫아 버린다. 사방은 더욱 고요해진다. "아아~"  목이 탄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한국어가 전부인 나~


일단 아이가 문을 닫은 건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낯선 사내였다면 몹시 망설였겠지만 세상 모든 아이들은 순수하다는 믿음으로 희망을 걸어본다.  몇 번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예상치 못하게 옆집에서 문을 열고 한 여인이 나온다. 자세히 보니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소녀다.


"अल्लाहबंली"

".... 저기.... 물...."

"....."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해본다. 한참 내 얼굴을 살핀 그녀는 이내 집으로 들어가 모래가 섞인 물 한 잔을 건넨다. 이게 어디냐며 일단 받아 마신다. 입속은 꺼끌꺼끌 거칠지만 금방 기운을 차린다. 아는 영어 단어가 쏟아진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공부라고 좀 할걸...' 아예 모르겠다는 표정이라 포기할까 싶었다. 그런데 가만... 번득 내게 수화를 열심히 가르쳐 주셨던 사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 수어를 잘하는 방법이 뭘까요?'

' 글쎄요. 일단 단어를 많이 알아야겠죠. 그래야 잘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 틀렸어요. 농아분들은 사실 수어를 잘 안 봐요. 그리고 연로하신 분들 중 수어를 모르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죠. 그럴 땐 어떻게 할래요? 농아인데 수어를 모른다면?...'

' 난감하네요. 그럼 글로 적어야 할까요?'

' 글도 모른다면요?'

' 흠... 어떻게 해요 저ㅠㅠ'

' 수어보다 더 중요한 거 그건 표정이에요. 아무리 수어를 잘해도 무표정으로 하면 하나도 못 알아먹는 게 수어예요. 이제부터 수어를 쓰지 말고 단어 하나하나 표현해 봐요. 분명 훗날 써먹을 때가 있을 테니까...'

- 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좋은 선생님께 수어를 배운 덕분에 많은 단어를 수어 없이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때 사용하라고 주말마다 고생을 했구나. ^^-


일단 환하게 웃어 보였다. 여인의 손을 한번 잡고서 하나씩 하나씩 표정과 몸동작을 사용해 낯선 곳에 내가 있음을... 집으로 간절히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다소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서서히 그녀의 고개가 미세하게 끄덕이고 있다.


' 아~ 다행이다. 정말...'


소녀는 마을의 연로자들에게 나를 데려갔고 그 후 어렵지 않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용하는 언어가 전부는 아니다. 결국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계를 경험한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고 싶은가? 그렇다면 몸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은 언어가 아닌 몸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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