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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21. 2020

사랑, 내면의 자유, 변화 - 내가 사랑하는 책.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책을 나는 내 인생 멘토님께 처음 추천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2년 전 겨울 남편과 함께 둘만 순천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읽었던 곳에 아직도 노란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다. 3번 읽으면서 여러 문구들이 생각나지만 그중 3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1번째 문장은 이것이다. 그는 아내의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존재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노라고 말했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듣자 아내 생각이 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마일을 비틀거리며 걷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나는 시를 즐겨 읽는 것도 그렇다고 매력을 느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날까지도 나는 시집을 한 번도 사본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시를 통해서 그 오랜 시간 시인들이 시를 통해 자연을 찬양해왔으며 자신과 타인을 위로했음을 시를 읽고 곱씹어 보고서야 나는 느끼게 되었다. 시를 점점 사랑하게 된 계기도 이 책 덕분이었다. 


'사랑 결국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만이 남겠구나~ 그 사랑 때문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며 눈 감을 수 있겠구나. 주어진 죽음의 멍에를 사랑으로 충족감을 느끼겠구나.' 가슴 덜리는 이 구절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2번째 기억나는 문장은 이것이다. 바로 삶의 태도와 내면의 자유였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나치 수용소에서 악몽 같았던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아우슈비츠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 추위, 배고픔, 수면 부족, 혹독한 노동, 육체적 정신적 고문,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의미,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음을 언급했다. 


사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래전 독립운동가들이 그러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쓰러졌던 분들이 그러했다. 정신적 자유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놓는다. 그 상황에서도 온전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나 역시 극한의 상황이 온다면 내가 지켜온 신념과 태도, 내면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나는 이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3번째 빅터 프랭클은 변화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가끔은 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승리한다.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변화시키는 것이며, 곤경을 성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 변화하라는 도전을 받는다. 


때때로 내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환경에 직면한다. 예를 들면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가 그러하다. 어쩔 수 없는 이 비극 속에서 상황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환경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단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변화의 힘은 내 안에 존재한다. 삶이 나를 힘들게 해도 강제수용소에서 날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그들만 할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사랑, 내면의 자유, 그리고 변화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나 역시 내 삶의 의미를 찾아 지금 순항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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