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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ug 29. 2020

공인중개사를 접고 아이스크림가게를 차린 남자.

"나 아이스크림가게 오픈했어."

"어?"


나는 잠시 헛것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장난을 친다고 하기에는 진지한 목소리였기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질문에 질문이 이어졌지만 일단 만나서 이야기 하자는 녀석~


"그래 어디 이야기나 들어보자. 아이 학원 갈 때 집으로 와"


첫사랑과 대학교 시절에 결혼한 남동생은 딩크족이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정파 남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서 영어 과외, 학원 선생님, 장인어른이 자격증을 따라는 말에 전기기술을 배우더니만 어느 날은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공사현장에 다녔다.


뭔가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여겼던 친정엄마는 동생에게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보라고 권했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적이었던 남동생은 1차 2차 시험을 학원에 다니지 않고 패스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인중개사를 차렸다. 이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겠지라고 여겼지만 초반에는 발로 뛰는 듯 무척 바쁜 남동생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도 영어 과외와 인테리어는 틈틈이 다니는 남동생은 쓰리잡?


아이가 없어서 저러나 싶었지만 사랑하는 동생을 보는 내 맘도 편치 않았다. 그런 남동생이 다 접고 "무인 아이스크림가게"를 오픈한다는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각이 깊은 아이니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럴 거야.'


까만 모자에 편한 반바지 차림의 남동생이 내 앞에 앉았다.


"그래 이야기해봐. 무슨 일인데..."

"누나 사실은..."


혹시 친정아빠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작년에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남동생은 영어와 인테리어 쪽 일을 접은 상태였다.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아빠를 모시고 매일 아파트 헬스장에 모시고 가 2시간 가까이 운동을 시켜드리는 남동생. 틈틈이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 일을 도왔다. 내가 아이에게 온전히 매어있는 동안 남동생은 내가 해야 할 몫까지 하고 있는 샘이었다.


"누나 그래서 접었어. 내가 공인중개사를 계속하면 신경을 써야 하니까... 알아보니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잠깐씩만 관리하면 되는 거더라고. 이미 인테리어랑 cctv 9개도 달고 왔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네... 미안해서 어쩌지?"


동생과 올케는 오래전부터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했던 부부의 꿈을 우리 가족은 응원했다. 하지만 친정 아빠가 쓰러지시면서 남동생은 기꺼이 그 꿈을 접었다. 편마비가 온 아빠를 위해 물리치료사가 된 남동생. 삶의 변화로 우울한 엄마를 위해 버팀목을 자처한 남동생.


"앞으로 아이스크림은 사지 마. 내가 갔다 줄테니까~ 그리고 엄마 아빠는 걱정 마소. 우리 때문에 고생하셨는데~" 


씩 웃는 남동생의 눈을 보기가 어려웠다. 공인중개사를 접고 무인 아이스크림가게를 열면서 아마 남동생은 참 많은 고민을 했을 테다. 그 고민을 함께해준 올케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졌다. 꿈은 저만치로 미뤄두기로 했다는 말에 코끝이 찡해서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건네진 까만 봉지 안에는 색색깔의 아이스크림이 한가득. 시원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으로 타고 넘어가는 순간 남동생의 가족사랑이 온몸에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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