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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Sep 13. 2020

지금 집으로 갑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단지에는 예쁜 집들이 가득하다. 유럽 엽서에 어울릴만한 2층 집 테라스에 하얀 커튼 위로 햇볕이 쏟아진다. 붉고 검은 돌담 옆으로 이슬을 머금은 풀잎들이 싱그럽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집들 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집 한 채가 있다. 하얗게 페인트칠한 나무판자를 빙 두른 담, 그 위에 빨간 장미 넝쿨이 감싸고 있는 집.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 집은 1층과 2층 그리고 다락에 이르기까지 많은 창들이 눈에 띈다. 자연스럽게 내 걸음이 느려진다. 


이 집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렌다. 저번에 보았을 때 없었던 작은 꽃들과 소품들이 눈에 띈다.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편다. 화초를 심는 엄마 곁에서 작은 화분을 옮기는 아이들의 모습, 긴 호수에 물을 주며 물장난을 할지도 모른다. 음... 어쩌면 퇴직 후 아이들을 다 출가시키고 부부만 이곳에 집을 지은 건 아닐까? 마당 안쪽 나무 벤치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와 그 옆에서 책을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올렸다. 


어떤 모습의 집주인이든 이 집과 잘 어울릴 터였다. 이 집을 지날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집에서 아이와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다. '아~ 이 예쁜 곳을 꾸미고 있는 집주인은 어떤 분일까? 굉장히 집을 사랑하는 분일 것 같아.' 궁금증이 더해갔지만 인기척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시간을 다르게 지나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반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날도 나는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었다. 그 집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어?' 굳게 닫혀 있던 현관이 반쯤 열려있는 게 아닌가? 먼발치에서 집주인을 볼 수 있는 건 아닐지 혹시라도 본다면 '집이 참 예뻐요.'라고 인사라도 할 참이었다. 그때 등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긴 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체 휠체어를 탄 여자는 딸처럼 보였다. 깡마른 팔과 다리,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나오기 싫다고 했잖아. 다시 들어갈 거야."

"볕이 이렇게 좋은데 5분만 산책하자 응?"


냉기가 서린 말로  반항하는 딸을 어르고 달래는 엄마의 표정이 서글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아버지가 나와 두 사람에게 큰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 버렸다. 세 사람의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을 보니 집안에서부터 큰소리가 오갔었나 보다. 


이 아기자기 한 집에 누가 살지 늘 궁금했다. 내가 사는 집보다 몇 배나 비싼 이 곳에서 여유롭게 살면 행복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집에서 나오는 두 여인을 보고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내가 그려왔던 집주인의 모습과 정반대였다. 마냥 예쁘고 따뜻하게만 보였던 그곳이 순간 낯설고 차갑게만 느껴졌던 이유는 왜였을까? 


순간 나는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절반밖에 걷지 않았지만 급히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작은 아파트 현관에서 양팔을 벌리고 나를 반겨줄 아이가 보고 싶었다. 행복은 집의 크기나 아름다움에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어머니와 딸을 보고 느꼈다. 결국 사람도 겉모습보다 속 사람이 중요하듯 집도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집을 보며 더 이상 선망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내 집과 가족을 더 아끼고 사랑해야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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