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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Sep 16. 2020

필사 - "몰입의 기쁨"

하루도 빠짐없이 1년을 필사하면서...

*필사 : 책이나 문서 따위를 베끼어 씀.

*몰입 : 어떤 대상에 깊이 파고들어간 빠짐.


작년 9월 1일 처음으로 필사를 위해 노트와 펜을 구입했다.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나는 "필사"를 들어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었다. 이따금 핸드폰 화면에서 좋은 문구가 나오면 다이어리 가장자리에 적어놓았다. 하지만 그저 낙서일 뿐, 다시 찾아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침에 일어나 펜을 드는 일이 일상의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그날의 문장을 한번 읽고  휘리릭 쓰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장에 담긴 의미와 필체에 더 신경이 쓰였다. 좀 더 반듯하고 가지런하게 어떻게 하면 오래 간직하고픈 필체를 가질 수 있을까? 한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써보기도 하고 그중 가장 맘에 드는 필체를 골라 필사 노트에 옮겨 적었다. 한 권 두 권 쌓여가는 필사 노트를 보는 것은 자기만족에 빠지기 충분해 보였다.


정신을 집중하고 쓴 내용은 신기하게도  시도 때도 없이 생각주머니를 통해 튀어나왔다. 마치 아침에 들은 노래를 무의식 중에 하루 종일 흥얼거리는 일처럼 말이다. 저녁이 되어 눈을 감을 때까지도 필사한 문장이 머릿속에 맴돈다. 급기야 어떻게 하면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 "적용점"을 구상해보기에 이르렀다.


필사를 하는 그 시간만은 오롯 글자와 나, 우주에 둘만 존재한다. 펜 끝으로 수놓아지는 직선과 곡선의 향연은 마침표를 찍으면 끝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갈증은 더해갔다. 한 문장으로 시작한 필사는 어느덧 시 필사, 노래 가사 필사, 책 필사로 이어졌다. 온전한 집중이었고 몰입이었으며 기쁨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어떤 일에 몰입해야 할 때 하나의 방법으로 필사를 먼저 하곤 한다. 짧은 문장을 필사하고 책을 읽거나 공부할 책을 펴면 훨씬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다시 밑줄을 그으며 필사할 거리를 찾는다. 필사로 시작해 필사로 끝난다.


이제는 쓰는 일에 그치지 않고 글씨를 그리는 캘리그래피까지 영역이 점점 넓혀졌다. 요즘 들어 캘리그래피 역시 몰입하는데 더없이 좋은 도구임을 체험하는 중이다. 언젠가는 지금 하고 있는 필사를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이제 1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나의  필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을 빼앗겨 허우적거리는 필사는 진정 늪과 같다.  필사가 내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그 무엇도 아닌 "몰입의 기쁨"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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