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의 불안, 숙명의 불안
수능이 끝났다.
난 매년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이 가장 부럽다.
사회에 나오기도 전이라 아직도 많이 남은 그들의 가능성도,
큰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그들의 기회도.
하지만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그들이 느끼는 성취감이다.
직장은 직원에게 성취감을 부여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박한 곳이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거니와)
'끝'이라고 표현할 일들이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보통 영업을 하는 부서와 기획을 하는 부서 두 개로 나누어보면
기획이나 전략적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들은 보통 기한이 없거나 긴 업무를 한다.
'00를 제고할 전략을 수립하라' '00를 개선할 프로세스를 기획하라'
위에서 마음에 들어 하면 그때 끝나는 업무라
이런 부서는 성취라는 것을 아주 가끔 느끼게 된다.
위에서 컨펌하시면 그때서야...
그나마 영업을 하는 부서는 지표가 매우 명확해 성취감 측면에서는 더 낫다고들 한다.
어느 시점에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건수, 계약물량, 매출액, 영업이익 등 어느 특정시점에는 성과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것에 시달려야 한다. 목표를 채우지 못할까 봐 느끼는 불안함으로.
[불안함은 상승곡선]
나의 회사 생활이 계속될수록 불안함은 점점 늘어난다.
신입때와 비교해 보라. 그때도 불안하기 했지만 거의 꿈과 기회를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보통 느끼는 불안함은 이런 식인데,
신입 때는 "내가 이 팀에서 1년 동안 계속 질문만 하고 못 따라가면 어떡하지?"
대리/과장되면 "승진씩이나 했는데 사원 때보다/대리 때보다 나아진 게 없어 보이면 어떡하지?"
차장이 되면 "관리자 한번 못되어보고 여기서 끝나면 어떡하지?"
팀장/부장이 되면 "기껏 관리자 시켜놨더니 성과관리, 조직관리 뭐 하나 옆 팀만큼 못한다 그러면 어떡하지?"
임원이 되면 "쟤가 부사장 되고 나면 내가 치고 올라갈까 봐 나 먼데로 유배 보내면 어떡하지?"
점점 내 손으로는 컨트롤하기 어려운 영역의 불안이 늘어난다.
[컨트롤하면 줄어는 들까?]
너무 잔인하고 씁쓸하지만 사실대로 얘기하면
과거의 나와 수직비교하며, 옆 동료들과 수평비교하며...
나 자신을 믿고 싶어도 보상과 인정이 제때 주어지지 않으면 성취감이 바닥나면서
자기 신뢰를 잃어가고 그 자리를 불안함이 채워간다.
이 불안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즐길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난 그럴 때 불안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줄이려고 노력할수록 더 생각날 뿐이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 보세요'하면 '코끼리만 생각난다'
오히려, 과거의 나의 불안과 옆 동료들의 불안을 같이 보라고 하고 싶다.
과거의 나의 불안을 보면, 그것은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옆의 쟤도 나보며 불안해할 거란 걸 (못 믿겠지만, 나의 불안도 별로 밖에서 보기엔 티가 안 날 것) 생각해 보면 나의 불안이 좀 더 작아진다.
그것이 나에겐 현실적인 불안감 해소의 방법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불안을 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박한 외면의 방법이었다.
나의 지금의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내 것이 아닌 불안에 관심을 갖음으로 해결하는.
모른 척 외면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잡아도 잡아지지 않는 여름철 모기 같은 불안에는 '맞서지'말고
지금 나의 불안을 '외면'하는 참신한 방법들을 찾아보자.
모자란 성취감과 충만한 불안감 속에 사는 우리는 오늘도 잘 싸웠다.
오늘도 꽤 능력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