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 주의보 #2] 여우
직장에는 늘 한 발 앞서있는 여우가 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 중 여우에게 당한 사연들만 모아도 '개론'을 하나 펴낼 정도의 두께는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나한테 이것저것 부탁 들어주고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돌아보니 내가 그 사람 일까지 해주고 있었다거나, 어느새 내가 그 사람 손에 묻어야 할 피를 대신 묻혀주고 욕을 대신 먹고 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한 얘기가 아닌데 누군가의 핑곗거리로 내가 쓰인 경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아부를 잘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 여우가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하수 여우가 아니라 자신의 먹잇감 앞에서만 여우인 고수 여우를 조심해야 한다.
집단생활에서 여우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만큼은 피할 필요가 있다.
또는 그들을 알아보고 깊게 엮이지 않을 필요가 분명 있다.
그들의 본질은 '자기편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업무를 위해 모인 곳이 회사이지만 여우들은 관계에 매우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자기편 N 수를 늘리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혼자 점심을 먹지 않기 위해 월요일부터 점심약속을 열심히 잡는 것도 그 일환이다.
1. 비업무적 호의로 관계를 시작_ 자기편에 대한 정보 획득
- 보통 비업무적 호의로 관계를 시작하여 상대에게 점수를 딴다.
업무적으로 신뢰를 쌓는 것보다 내편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업무 외적인 친절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 이다.
- 주로 개인 신상이나 제삼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며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표시를 하
고, '나도 너랑 같은 종족이다'라는 동족확인을 진행한다.
본인의 솔직한 얘기 한줄 정도를 흘린 후 상대 속마음의 '포문'을 열게끔 하여 거의 모든 정보를 받아가는
편인데, 대화 시작 중에는 상대는 '아 이 사람이 참 솔직하네'라고 느끼지만 여우는 정작 본인얘기를 잘
하지 않아 세월이 지나 보면 상대는 여우에 관한 정보가 많지가 않을 때가 많다.
- 과하게 간식을 자주 건네거나 소소한 물질공세 방식으로도 친분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2. 친절과 칭찬에 대한 보상을 기다림_ 거절에 대해 무관용
- 앞서 회피 주의보 #1에 해당한 대가성 칭찬은 이들에겐 주 무기이다.
- 이들은 자신들이 적립해 놓은 칭찬과 친절에 대해 보상받지 못하면 주위사람들에게 소문내고 싶어 안달이
난다. 기본적으로 대화를 할 때 상대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가능성이 낮다고 예상하여 정작 거절을 당하
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듯한 느낌을 받고 약이 차오르는 것을 입으로 푼다.
가령, 전화는 친절히 받아놓고 통화가 끝나면 옆사람에게 은근슬쩍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 자신의 부탁을 잘 들어주면 다른 곳에 가서 이 사람 칭찬을 해주는데, 자기가 소문내주는 것이 그 사람에
게 잘 보상해 주는 것이라고도 착각하며 마치 봉사하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3. 자신의 의견을 여론처럼 형성한다_ 자신과 다름에 대해 무관용
- 뜻이 잘 맞았고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A에게 동조받지 못하거나, 기다린 반응을 받지 못하면 A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B, C, D 등 다른 사람들도 A가 틀렸다고 뜻을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A의 사고방식, 행동거지에 대해 왜곡하여 소문을 내고 B, C, D를 향해 내 편 만들기를 시도한다.
4. 어디서나 주인공이고 싶어 한다 _ 어차피 결론은 '나'
- 여럿이 모여 얘기할 때 자신이 모르는 화제면 많이 불편해한다.
특히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가장 활발해진다. 따라서 어떤 화제가 나와도 '자기 것으로 끌고 가고 싶어
하 는'경향이 세다
- 그래서 자신과 캐릭터가 겹치는 사람이 같은 팀에 있으면 매우 불편해한다. 자신 유사직급/또래의 동일
성별 직원, 자신의 강점을 동일하게 보유한 직원 등이 있으면 그 직원을 한 번이라도 돌려 까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이번 출장 갈 때는 운전은 제가 할게요. 00 씨는 우아하게 뒤에 타고 계시면 됩니다."
"제가 좀 가까이 지내보려고 하는데 00 씨는 은근 선 긋는 스타일이잖아요. 제가 더 노력해야죠 선밴데"
"네, 팀장님! 수합 거의 끝났습니다. 2명 남았나. 00 씨 출근하면 확인해서 수합 보고 드릴게요!"
5. 누군가의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_ 자신의 편을 추가할 틈새시장
- A가 B와 사이가 안 좋으면 여우의 DNA는 자극받기 시작한다. 이 포인트에서 여우는 내편의 머리수가
늘어 나는 소리를 듣는다. 이때 A와 B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까지 부린다.
- 양쪽 중 더 우위를 점하는(주로 상급자인 경우) A 쪽의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B에게는 A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어필한다. 그리고 주위에는 A와 B와의 중재를 위해 본인이 애쓰고 있다는 자신의
미담이 알려지도록 기존 자신의 편인 친구들을 찾아가 A, B에 관한 에피소드를 데일리로 쏟아낸다.
여우는 이 기질이 회사에서 살아남고자 선택한 생존 도구라 환생하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을 건데
그럼 이들을 한 직장 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두가 여우의 타깃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여우가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대상이 되면 된다.
시대와 사상을 넘어 유명한 고전은 이유가 있다. 세기를 넘어서도 통할 생존방법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500년 넘어 명서의 자리를 유지하는 '군주론'에 의외로 직장생활에서 여우를 대적할만한 답이 있다.
'만만하지 않은'사람이 되는 것으로 여우는 피할 수 있다. 여우는 자신의 호의가 통하지 않거나 자신의 수를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을 먹잇감으로 잡는다. 그 먹잇감이 자신의 편 만들기에 해가 된다면 다른 먹잇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론호도'를 통해 먹잇가의 평판을 떨어뜨리고자 에너지를 더 쓴다.
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클래스로 보고 찔러볼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군주론에서는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받는 존재보다 두려운 존재를 해칠 때 더 주저한다고.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아래의 방법은 여우퇴치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생활 전반에 걸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감정소모나 두통을 예상해 줄 방법이다.
여우의 타깃도 되지 않고, 그 외 다소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튀는 구정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1. 이유를 질문하기
- 누군가가 부탁을 하면 "무슨 이유로 그러실까요?", "자료 요청 배경을 알 수 있을까요?"
이 정도 질문은 해주자.
말투가 까칠할 필요는 없다. 친절한 말투로도 훅 들어오는 상대를 제동 시킬 수 있다.
내가 말투는 친절하고 협조적이나 이유는 알아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 이 말이 여우에게 특히 효과적인 이유는, 대놓고 거절이 아니다 보니 여우에게는 욕할 명분이 되지 않고
자기편 만들기가 주목적인 여우에게는 '어? 내가 실수했나?' 한번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된다는 것이다.
여우는 자기가 누군가를 실망시켰다고 하는 포인트에서 무너지기 때문에 자신의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편이다.
2. 적당히 질문해 주기
- 여우는 정보획득을 위해 질문을 매우 많이 하는 만큼 자신도 주목받기를 바라서 누군가의 질문이 항상
고픈 종족이다.
(정작 깊은 얘기는 잘하지 않는다. 보통 둘러대고 뭉뚱그려 말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기 때문)
-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이 여우 퇴치용으로, 그들을 만나 1분 이상 대면하게 되면 한 개쯤은 질문해 주는
것이 먹잇감으로 안 엮이고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점심 뭐 드세요?" "이번 주말에는 뭐 하세요?"
식사, 날씨 등 일상 어떤 주제든 그냥 던저주고 끝나는 거다. 힘들이지 않고.
- '절대' 제삼자의 얘기는 피해야 한다.
여우가 여론을 형성할 때 내가 탄피로 쓰이지 않으려면 누군가에 대한 나의 생각은
행여 그 앞에서는 한 줄이라도 풀어놓지 말도록 하자.
3. 나의 상급자에게 중간 보고 잘하기
- 결국 직장 내에서 만나는 여우이니 예방을 위해서는 업무적 나의 방어막은 필요하다.
-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있는데 여우는 자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로 나를 핑계로 든다거나,
자신의 일이 많다며 같은 부서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싶어 할 때 난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
-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여우가 움직인 팀장님의 새로운 업무분장에 적절히 방어하지 못하고
'책임감'으로 또 그 일을 받아낼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수시로 뭘 하고 있는지 팀장, 부장 등 상급자에게 중간보고를 해줘야 한다.
- 생각보다 윗사람들은 아래에서 일어나는 여우 發 사건사고에 관심이 없고, 팀원들의 일을 모두 파악하지
못할 수 있으니 내가 억울하면 팀장님이 아시겠지 하는 생각은 혹여 하지 말자.
- 희망 없는 기대 대신 빌드업이 필요하다.
일일이 팀장님에게 내가 뭐 하고 있다고 주절주절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라면 중간보고가 아주 효과적이
다.
나중에 내가 행여 추가 업무 인수가 가능해 보일 가능성은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바쁜데 '여우 같은 거 하나 대처하자고 신경을 써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무던하게 넘어가는 성격이라면 정말 다행이다!
에너지도 신경도 안 쓰면 그만이다!
맞다. o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지만 열심히 내 일에만 집중하며 무시하던 o이라도 문득 그 냄새가 신경 쓰이는 날이 올 수 있다.
그때 나에게 큰 피해가 없도록 '만만하지 않은'사람이 되어 두통거리 하나쯤은 없애보면 좋겠다.
나만의 성벽이 탄탄했던 하루가 되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