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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Dec 05. 2020

미국의 난민 정착 기관, 인턴일상다반사


2개월째 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 (IRC)라는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IRC는 국제구호 NGO로 미국 내에서는 난민 정착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난민 정착사업도 보건, 경제, 영양, 교육, 일반적인 사례 관리 등으로 다양한데 나는 Intensive Case Management라고 보건 유닛 안에서도 특별한 사례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 (여기서는 클라이언트라고 부른다.)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싱글 맘, 기저질환이 있거나 장애가 있거나, HIV 감염자 등 여러 이슈들로 인해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Intensive Case Management 사업의 대상이다.

서류 전형과 인터뷰와 범죄기록 clearance 등 여러 단계를 거쳐서 인턴에 최종 합격하고 처음 내가 하는 업무의 세분화된 JD를 봤을 때 navigating health system이라는 말이 있어서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래서 도대체 뭘 한다는 거야?'

더군다나 코로나로 모든 업무가 재택으로 전환되면서 실질적으로 내가 하는 일의 성격이 어떤 것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두 달 즈음 일하고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게 된 지금에서야 'navigating health system'이 어떤 것인지, 그 과정을 돕기 위해서 미국 정부나 난민 정착지원 단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다.

#1. 인턴 일상다반사, 인턴 업무 A to Z.

내가 그 언어를 하나도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에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떨어졌다.

그 나라에서 얼마가 될지 모르는 기간 동안 쭉 살아야 한다. 아마도 평생이 될지도 모른다.

말도 안 통하고 글도 읽을 수 없다.

지병이 있어서 거의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꼭 병원에 가야 한다.

이게 내가 지원하는 대부분 난민들의 케이스다. 더 심한 경우도 더 덜한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다.

난민 정착지원 단체가 하는 일은 그 난민이 정상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다.

도착하기 전부터 가족 구성원 수 등을 파악해서 아파트 세팅하는 일, 장을 볼 수 있는 곳을 알려주고 대중교통을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

도착하면 30일 안에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medical screening (주로 여러 감염성 질환 유병 여부를 스크리닝하고 필요한 예방접종을 한다.) 일정을 조율하는 일, 주치의와 첫 미팅을 잡는 일, 보험을 신청하는 일, 병원, 약국 등 의료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일 등을 한다. 지역사회 내에 가용한 여러 자원들에 대해 알려주고 연결시켜주는 일도 한다.

나는 보건 유닛에 속한 인턴으로서 주로 의료 서비스와 관련된 여러 업무들을 수행한다.

클라이언트 일정을 확인해서 예약을 잡고, 클라이언트에게 리마인드를 해주고, medical taxi (휠체어 등을 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택시)를 예약하고, 어느 정도 정착 기간이 지난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는 스스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는 방법이나 약국에서 약을 찾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리고 ICM에 등록된 클라이언트들에게 정기적으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어려움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통역사를 끼고 해야 한다.

모든 업무가 원격으로 진행되니 일단 해당 난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파악하고 (스와힐리어, 수단 아랍어, 소말리아어, 스페인어에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들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통역사에게 연락해서 함께 통화를 한다.

현장을 다닐 때 통역을 끼고 현장 주민과 대화하는 건 익숙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그것도 전화로 통역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이 프로세스 자체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와 닿은 점은 미국의 난민 지원 체계다.

난민 선발에서부터 배정, 그리고 정착 지원이 굉장히 촘촘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이건 2탄에서...)

그리고 난민 정착지원 단체들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화하긴 조심스럽지만, 지원 단체들의 시스템(지원 프로그램뿐 아니라 정보 축적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서 여러모로 많이 배우고 있다.

인턴/직원을 위한 교육 커리큘럼도 탄탄해서 통역을 잘 활용하는 방법처럼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미국 난민 정착 프로그램의 역사와 과정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 의료전달체계에 대해서도 거의 무지했는데 주치의나 전원(referral), 미국의 보험 체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다.

오늘은 수단에서 온 클라이언트를 훈련시키는 일을 했다.

병원에 전화를 걸고 통역사를 요청하고 예약을 하는 과정을 20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통역사와 함께 마쳤다.

"자, 이제 하실 수 있겠죠? 이번 PCP(primary care physician) follow-up은 직접 해보시는 거예요"

"이번만 IRC에서 해주세요. 다음번부터는 제가 할게요"...

"이번만이에요. 다음번에는 꼭 스스로 하시는 거예요"

슈크란! (Thank you)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과연 아저씨는 다음번에 스스로 예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샬라. (ان شاء الله)

어쩌면 다음번에도 아저씨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음번에는 내가 스스로 할게요" 할지도 모르겠다.

인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두려움이 컸다.

언어도 서툴고, 미국 의료시스템도 잘 모르고, 거기다 메일, 업무 관련 소프트 웨어나 새로운 데이터 베이스 등 새로운 기관에서 새로 익히고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누구에게나 처음은 두렵기 마련이니.

예전 외부 평가자로 소위 현장에 갔을 때는 이방인이라는 기분이 컸다. 지금도 여전히 내부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더 가까이서 더 자주 어려움을 듣고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소소한 기쁨과 보람이 있다.

두렵고 낯선 타지에서 마주친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기억하며 오늘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길.

그 마음으로 두려운 첫걸음을 함께 떼주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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