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내 네트워크

by 은한

이거 다루기에 엄청 넓은 개념이라 일단 조각 조각으로 스케치만.


-시간이 흘러가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과거가 쌓인다. 과거는 시간순으로의 "직선"이 아니라 사건중심적으로 "점"으로 남게 된다. 점은 일렬로 배열되어 있는 게 아니라, 우주의 별처럼 아주 불규칙적으로 존재한다.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사건일수록 굵고 빛나는 점이 되고,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에서는 희미하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점이 된다.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사건중에 내 인생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핵심이 되는 점도 생긴다. 핵심이 되는 점을 중점으로 점들이 연결된다. 물론 핵심이 되는 점이 아닌 점과 점 사이의 연결도 무수히 많을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점일수록 더 굵고 빛나겠지만 경우에 따라 점들 사이의 시간성은 무의미하기도 하다.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 아주 옛날의 사건은 누구라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건은 나의 의지와 관련없이 벌어질 수도 있고, 나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사건은 현실(인간 관계, 일, 여가, 놀이 등등) 활동에서 벌어질 수도 있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 상상을 하는등 뇌안의 사고활동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디자인, 예술 작품, 사업체, 문화, 발명품, 이론 등을 만들며 남들에게 또한 사건이 될 만한 사건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굵든 희미하든 점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경우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점과 점의 다발적인 연결에서 보다 창의적인, 건설적인, 정교한 생각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에 받아들인 모든 경험은 결국에 과거로 흘러간다. 현재를 의미없이 보낸다면 과거로 보낼 수 있었을 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또 현재를 추악하게 보낸다면 과거로 갈 굵거나 희미한 점들이 부정적이고 사악할 수 있다. 부정적이고 사악한 점 하나가 나의 인생은 물론 남의 인생, 온 세상에까지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게 만들 수 있을지 섣불리 단언하지 못하겠다.


-기록이나 기억의 되새김질은 아주 희미한 점이라도 사라지지 않게 오히려 굵어지게 만들 수 있다. 좋은 글을 많이 쓰고, 좋은 기억을 자주 떠올려야 할 이유다. (나의 경우 안 좋았던 기억도 미화시킨다. 예를들면 특정 인물중에는 당연히 나에게 좋은 기억도 안 좋은 기억 모두를 남겨준 사람이 있을 텐데, 안 좋은 기억은 최대한 망각시키고 좋은 기억을 부각하는 것이다. 그럼 걔에 대한 뒤끝도 안 남고, 내 스스로에게도 좋은 점을 남겨주는 것이니 일거양득이다. 물론 그 사람은 현실에서는 종결된 과거의 사람이어야 한다. 현실의 인물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파악해놓아야 손해볼 일이 안 생긴다.)


-최근에 이런 뇌내 네트워킹이 이루어짐을 체감-관찰하면서, 양질의 경험을 더 많이 쌓아야함을 느꼈다. 문사철에 관한 독서를 더 하고 싶고, 해외 여행을 다니고 싶으며, 탁월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어느 때는 수학, 자연과학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쌓아놓은 점이 질 좋을수록, 양 많을수록 받아들이는 정보를 더 알차게 곱씹고, 알맞게 활용할 수 있음을 느꼈다.


-사건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일상보다는 특별한 일탈에서 발생하지만, 같은 일상이라도 더 깊게 혹은 다르게 바라보는 시야에서 생기기도 한다.


-사건은 미래에 관한 상상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미래에 생길 수도 있을 점을 현재에 미리 만들어 과거로 보내는 것이다. 오묘한 개념이 되는데, 현재에 했던 미래에 관한 상상도 결국에 과거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미래에 관한 상상도 특별한 영감을 (하늘로부터?) 받지 않는 이상, 뇌내 네트워크를 통해 할 수 있게 된다.


-미래 상상의 점은, (모든 점이 그럴 수 있겠지만 특히) 또 다시 받아들이는 점들과의 네트워크에 따라 그 내용물이 바뀌기 쉽다. 수정, 삭제, 보완, 업데이트.


-핵심 사건은 사람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경우 인생이 불행하게 흘러갈 확률이 높겠지.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영화 인사이드아웃을 인상적으로 봐서(이것도 점이 된 것이다 ㅋㅋ)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과 사건중심적인 점(인사이드로 치면 색깔별 구슬)의 생성에 관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점과 점 사이의 불규칙/카오스적인 연결"(인사이드아웃의 경우 구슬들을 순차적으로 단순 배열해놓음)과 "형이상학적인 생각, 미래에 관한 상상도 사건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영화에서는 주로 현실활동에서 구슬이 생김-1인칭 유아 시점이라 더 그렇게 제작했겠지만)에 주목하고 싶다.


-어떤 특정 활동이나 음식물의 섭취(나의 경우 카페인)가 점 자체를 부각시키기도 하고 점과 점사이의 연결을 촉진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점의 굵기, 점 사이 연결의 다발성, 연결의 강도. 뇌내 네트워크는 크게 세가지의 변수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신체의 노화는 25세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굵은 점을 많이, 점 사이 연결이 다발적이게, 연결을 강하게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나이는 25세가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아닐까? 25세가 지나면 뇌내 네트워크의 성장에 있어 최소한 가속도의 기울기가 줄어들 것이고, 보통은 속도의 기울기 자체가 줄어들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에 속도가 제로나 마이너스가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고. 최소한의 가속도 감소쪽에 속하려면 전보다 많은 자극과 잦고 깊은 사색이 필요할 것이다.

(신체의 노화가 25세부터라는 말은 결국에 한 개인의 생체적 전성기 또한 25세라는 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속도 빠를 때 많이 배워두자는 경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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