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속성

by 은한

예전에 한참 시크릿류의 서적을 읽을 때,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사실 만물은 99.999% 비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뭔말이야 내 살은 이렇게 만져지고,난 저 초콜릿을 씹어먹을 수 있는데. 근데 모든 물체의 구성을 가장 최소 단위까지 그러니깐 양성자와 중성자까지 파고들었을 때 양성자와 중성자마저 핵을 제외하고는 아예 비어있는 원소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적으로 볼 때는 그게 맞는 말이 되는 것이다.(얘들한테 핵이 없었나? 헷갈리네, 없으면 그냥 원자로 치고)


시간도 사실 비슷한 것 같다. 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비어있다. 평범한 일상을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샤워를 할 때 내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온전히 집중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그런 식사를 하는 데 온 미각에 신경을 쏟아붓지 않는다. 매우 크리에이티브하거나 어려운 업무가 아니고, 특별한 걸림돌에 걸리지 않는 이상 일도 그냥 저절로 하게 된다. 위에 말한 바를 다시 짚어내면 샤워를 할 때,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면 그 시간은 잠깐 핵이 되어 깜짝놀라 온도를 조정하게 된다. 밥을 먹다가 돌이 씹히면 그 시간도 핵이 된다. 일을 하다가 특별한 걸림돌에 걸리면 핵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부분의 시간은 비어있지만, 예외적으로 '핵'이 더 오랫동안 반짝이는 시간이 있기는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정말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할 때. 원하던 여행지로 떠났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일상이 아닌 일탈을 행할 때. 평범하지 않고 특별한 무언가를 다룰 때.


불교에서는 매순간 깨어있으라고 설파한다. 아주 평범한 시간에서도, 예컨대 설거지를 하더라도 온 정신을 손과 접시에 집중해 현재에 살아있으라고 말이다. 나는 군대에서 이 문제로 실존적인 고민에 깊이 빠진 적이 있다. 비어있는 시간에 '생각'을 하는 게 맞을까, '자각'을 하는 게 맞을까? 한참 불교 서적을 읽을 때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극단으로 끌고가봤다. 매순간 깨어있으라 했는데 만약에 살인이나 강간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그때도 깨어있는 게 옳을까? 고통에 정신을 집중하는 건 미친 짓이 아닌가? 극단으로 상상을 끌고간 덕분에 매순간 '자각'을 하라는 불교의 강제성과 무책임함에 의심을 품게 되었고 그게 꼭 올바른 삶의 양식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무의식에 맡겨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불교는 무의식과 의식을 일치시키라고 한다. 나의 의식은 항상 무의식과 동떨어진 저 먼 곳에 가있었다. 아주 먼 과거나 까마득한 미래, 현실에서 보이는 사건이나 물체를 깊이 파고 들고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시간 안에서 시간을 생성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투잡을 뛴다. 아침에 일어나 사과 하나 커피 한잔 먹고 자전거 타고 출근해 일하다 밥먹고 다시 일하다 자전거 타고 퇴근하고 반죽을 하고 장사를 출근해 퇴근해 잠든다. 하지만 모두 비어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표면적인 일을 함과 동시에 이상하고도 엄밀한, 야망 넘치며 기발한 생각을 항상 강박적으로 습관적으로 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비어있고 나의 핵은 그 부분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서 시간을 생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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