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라는 거름
1.지금 이 순간을 누릴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다. 우주의 시간은 인생의 시계는 쉼없이 흐르고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다만 기록을 남기면 물질적으로 완벽히 되돌아갈 순 없어도 정신적으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회상에 잠기는 것. 기록이란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나로 잠시 되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금방 잊혀사라질 수 있는 아무런 의미없어 보이는 순간들은 기록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숨결을 부여받는다. 기록은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기록은 내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다.
내 삶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히 꾸준히 많이 오래도록 기록될 것이다. 나의 손으로.
2.기록의 힘은 생각보다 더 큰 것 같다. 군대는 하루가 반복되고 일주일이 거기서 거기고 한달이 그대로고 한 분기가 비슷하고 일년이 지루한 그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답답한 공간이었다. 같은 형식의 무한한 반복.
거기서 내가 형식에 묻혀 하루 하루를 태워버렸다면 21개월은 말그대로 시간 낭비였겠지. 하지만 하루를 마무리할 때 별 다른 일이 없었다면 꼭 일기를 썼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그안에서 겪는 감정과 느낌, 생각을 어떻게든 다양하게 끌어내려 애썼고 하루가 끝나기 전에는 어떻게든 그걸 기억해내려 애썼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기록은 다행히 이리저리 퍼져 사라지려는 하루하루를 좀 더 끈적하게 만들었고 쌓아올리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끔찍하리만치 형식적이었던 하루들에서 다르길 바랐던 마음, 발전하길 원했던 욕구가 생각에 깊이를 줬고 감정과 느낌을 더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훈련시켜 준 것 같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비슷하다. 24살의 반년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은 빠르고 성취는 적으니 조바심이 생긴다. 그래서 기록을 하게 된다. 내 삶의 줄기가 더 튼튼해지고 힘있게 자랄 수 있도록 뿌리에 거름을 준다. 기록이라는 거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