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고 떠올린다는 것

by 은한

1.

어젯 밤에는 전날에도 새벽 세네 시쯤 늦게 잠들고, 오후 세 시쯤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잠들 기미가 안 보였다. 기분은 피곤한데 정신은 아직 잠들기 원하지 않는 애매한 순간. 잔잔한 음악이라도 듣다 보면 잠이 오겠지 하고 음악을 들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간만에(?) 브로콜리너마저를 틀었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어 그 노래를 자주 듣던 스무 살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고, 그때 만나서 함께 무리지어 다니고 여행도 종종 다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중의 한 명 이야기.



2.

16년 이맘때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여름에 미련없고 가을을 반길 무렵 나는 한강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당시 다니던 학원을 오후 6시쯤 마치면 하루가 멀다하고 자전거 타고 한강으로 달려가 해질녘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낮과 밤이 교차되는 그 순간의 광경을 감동스럽게 바라보았다. 여름과 가을 사이, 낮과 밤의 사이 대음양의 교차점에 가만히 놓여있던 순간이 있었다.



그 날은 초승달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었다. 와인잔에 담겨 있는 포도주를 보듯 초승달에 담겨진 밤하늘에 취하고, 그 밑에 애석하게 사라져가는 은은한 노을빛 애도하며, 보라와 주황이 섞인 미묘한 분홍빛 강물의 물결에 함께 실려가는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스무살때 동아리에서 만나 같이 돌아다니며 놀던 친구가 하늘로 갔다는 것이다.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는데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고 했다. 대학교를 1학년만 다니고 중퇴를 한 뒤 서울로 올라왔던 터라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고, 그 친구와 그렇게 유별나게 깊은 관계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긴 했다. 스무살에 함께 엮여있었고, 군대를 전역하고도, 방학 때마다도 한 번씩 대학교 친구들을 찾아가거나 여행을 다녔던 정도라 스무살 이후에는 이벤트성 관계에 지나지 않긴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친구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했다.



심지어 그런 선택을 한 날은 그 친구의 생일이 지나고 며칠 안 된 날이어서 같은 과 친구들이 생일 파티까지 해준 날이었다. 나도 생일 날, 그러니까 불과 얼마전 간단하게 카톡으로 축하 메세지를 주고 받았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영영 사라졌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나에게 감미롭던 그 초승달은 그에게 날카롭고 잔인한 비수로 내리꽂혔던 걸까.



그때 나는 사주 명리학에 막 관심을 가지고,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당연히 그의 사주를 들여다보았지만, 당시로서는 뭐가뭔지 모르겠고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런 비참한 이유로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 문상을 갔고, 그 날 밤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그에 대한 의구심을 쏟아내고, 추억도 하고, 원망도 하고, 갖가지 추론과 분석을 하고, 누구는 취해서 울고불고 그랬지만 유언 없이 죽은 무뚝뚝한 자의 속마음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그의 고향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면서도 그간 찍은 사진,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고, 머릿속에서 그와 함께 한 기억나는 모든 순간을 되새겨보기도 했지만 그 갑작스러운 부재를 이해할 도리는 없었다. 부재의 순간 오히려 그 존재가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아이러니.



3.

우리들은 그 부재의 트라우마를 차례로 겪으면서 애써 메꾸려고 했다. 꿈에서도 언제나 있었던 그이고, 언제나 있을 것 같은 그처럼 나와서 친구는 "니 죽은 거 아니가?"라고 물어봤는데 "그거 거짓말이다 헤헤"라고 했다나. 꿈에서 깬 그는 한동안 그가 정말 어딘가 살아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그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 존재의 거짓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오랜 기간 함께 자취했던 친구라 그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서울로 다시 올라온 나한테도 그의 부재가 존재했다. 자려고 누워있으니 그의 얼굴이 방구석에 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얼마 안 있어 몸이 꼼짝도 못하는 가위를 눌렸는데 그 특유의 웃음 소리가 소름끼치도록 방안을 가득 채웠다. 꿈에서도 종종 나왔었는데, 대부분 그가 죽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였다. 공시를 준비하는 어떤 친구는 혼자 독서실에 들어가기 무섭다고 했다. 그가 자살전 마지막으로 했던 통화가 그 친구였는데, 그는 그 통화를 받지 못했고, 영원토록 부재중 통화로 남은 것이다. 그 메세지의 공백을 어떤 정신이 가만히 놔둘 수 있을까.



이제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한결같이 그를 언급하고 아직도 의문스러워하며 여전히 원망하기도 한다. 우리들의 추억을 겹쳐놓았을 때 언제나 그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던 친구가, 그의 마음이 다시는 채워질 수 없으리라는 현실을 부정하면서 수긍하고 수긍하면서 부정하는 언어들.



4.

어제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이 불현듯 그 친구를 불러왔고, 그동안 사주 실력을 키워온 나는 다시 한 번 그 당시 그의 마음,생각,상황을 이해해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이해했다면 오만하고 경솔한 말이겠지만 어느 정도 그 원인, 동기, 조짐, 그런 선택을 할 만한 성향의 복잡한 퍼즐을 이제야 간신히 꿰어맞춰볼 수 있었다. 그동안 그를 향했던 모든 의문과 원망을 더 이상 찝찝함 없이 보내줄 수 있으리라.



5.

그런데도 잠이 안와서 오늘 도대체 일진이 뭐지? 하고 들여다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18.8.17 03:00의 사주 / 16년에 떠난 친구의 사주

庚辛庚戊 庚辛ㅇㅇ
寅巳申戌 寅巳申ㅇ


그 날, 그 시간대의 공기가 너와 닮아있어서 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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