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수잔>이라는 앨범은 이번에 나오자마자 들어보았고, 그 후로 거의 한두달은 매일 몇번씩 앨범 전곡을 반복해서 감상했을 것이다. 한참 미술관 전시회를 돌아다닐 무렵.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홀로 낯선 동네에 가서 꿋꿋이 전시회를 돌아다니던 나날. 불과 몇 개월 전 일인데 이렇게 까마득히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 사이에 쌓여진 경험과 생각, 감정과 글들은 나를 또 이렇게 바꾸어낸 건가. 오랜만에 이 노래를 틀자 그때의 고독감과 이 음악에 흐르는 고독의 분위기가 강하게 결합하여 나는 추억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비장한 어감을 갖고 있어, 이 가볍고 짧은 인생에서 부르짖기 어쩜 민망하기도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대 고독의 순간이 인생의 끝에 커다랗게 기다리고 있기에, 나약한 인간은 고독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고독. 고독. 몇번 더 되뇌어본다.
고독.
사실은, 고독이라는 감정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가 아닐까. 우리는 고독이 오면 어찌나 그걸 무서워하는지 친구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고 인터넷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글을 읽으며 방송을 보며 사람 구경을 한다. 고독은 항상 꺼려지는 존재, 사라져야하는 음흉하고 음침한 것. 조금이라도 함께 붙어있기 싫은 끔찍한 것. 가장 외로운 건 세상 사람들 저마다 품고있는 고독이라는 외톨이들이 아닌가.
홀로 살고, 홀로 다니는 날이 많아지자 나는 고독과 조금 친해진 것 같다. 아, 이것은 참으로 산뜻한 역설. 고독과의 화해. 쓸쓸한 나의 자아와 고독이라는 감정이 친해지면 각자의 하나였던 것이 함께의 둘이 되고 우린 둘 다 외로울 것이, 아니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지지 않고는 어떻게 배기겠나. 고독과 친해진다는 것은 자유와 친해진다는 것과 같은 말. 고독을 즐긴다는 건 온전한 개인으로 땅을 밟아갈 힘을 얻는다는 말.
존재의 깊은 저변에 가장 어둡고 적막한 곳에 깔려있는 고독을 온 몸으로 감싸 안아줄 때, 불빛 하나 없는 것 같던 저 깜깜한 밤하늘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이 하나 둘, 그렇게 우수수 드러난다. 고독의 밤하늘에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은하수가 폭포처럼 꽉 채워 흐른다. 흘러 넘친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저 작은 별 하나, 그래도 하나의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보자고요.
고독해도 살아볼 만 하지 않나요?
혼자라서 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고
혼자라서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