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신 삼형살의 사고수2

by 은한

17년 12월 상담소 오픈할 때 구매해서 겨울 시즌마다 잘 쓰고 있던 전기 히터가 어제 갑자기 폭발하는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폭발이 크게 일어난 게 아니라 전기히터의 파편이 내 몸에까지 튀어서 피를 보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그 근처에서 물뜨면서 서성이고 있었다면 다리에 파편들이 박히지 않았을까. 상담소에 출근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잠깐 읽어보고 있는데 옆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으로 깨져서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고 깜짝 놀랐다. 깨진 유리는 바닥에서 계속 튕겨지면서 더 잘게 쪼개지고 있었다. 상담소 바닥은 그야말로 유리 조각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을 눌러두고 일진을 확인하니 기해년, 병인월, 신사일, 을미시였다. 인월 사일이라 인사 형살이 발생하는데, 병인 월로 병화까지 투출하니 형살이 대놓고 적극적으로 발생하는 시기가 된다. 기해년이니 해수가 인목과 육합을 치고, 사화를 충하고, 생지끼리 모이니 복잡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내 팔자에는 인사신 삼형살이 들어있어 형살이 중첩되니 사건사고의 발생률이 배가된다. 그리고 사건 발생 시각이 대략 15시12분쯤이었는데 20분쯤 뒤면 병신시로 신금이 들어오니 곧 삼형살의 시간이 드리울 차례였다. 그 전의 을미시는 백호대살 호랑이가 머무는 시간대로 움츠렸다가 덤벼드는 압력,폭발성이 생긴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간, 여기서 이런 사고가 발생할까 생각하면서 일진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쩌다가 정상 제품이 아닌 불량품을 받게 되었는데(그것도 내 원국의 삼형살과 연관있으리라) 그게 대놓고 불량품은 아닌지라 제품 자체적으로 데미지가 조금씩 누적되다가 지금 일진이 들어온 이 시간의 이 공간에 에너지가 수직으로 찍히면서 사고가 쾅하고 터지는 것이다. 올해가 亥해년이 아니라 巳사년이었으면 나에게 직접적인 상처,피해를 입혔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나는 삼형살이 문제를 일으키는 巳사년마다 흉터가 하나씩 생겼으니깐)


황당과 당혹스러움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바뀌었고 이 제품을 어디에서 샀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제품 뒤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통해 제품명, 유통회사 이름, 소비자상담 a/s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걸었다. 기계음의 여자는 직원과의 상담을 원하면 숫자 1을 누르라해서 눌렀지만 신호는 가닿지 않았다. 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전화 통화중이라는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기계녀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멀쩡히 쓰던 제품이 갑자기 폭발할 정도의 제품을 유통시킬 정도의 회사라면 바쁠만 하겠다는 납득도 됐다. 하지만 그 전화를 20분 동안 이어가도 여전히 상담원과 연결되지 않고, 기계녀는 "현재 고객이 통화중이라 연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어마저 틀리게 말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회사 사이트는 커녕 주소, 전화번호도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검색을 통해 나와 같은 문제를 겪었던 네이버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회사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이쯤되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했다. 한숨을 내쉬고, 심호흡을 하며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다행히 회사 이름을 말하며 용건을 물었다. 제품에 하자가 있어 소비자상담 AS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연결이 도저히 안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 직원은 그런 상황이 낯설지 않은듯 AS팀의 누군가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직원의 말투를 미루어봐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라고 짐작했다. 어쨌든 전화를 끊고 건네받은 개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다시 본사에 전화를 걸었고, 또 하나의 새로운 번호를 받았다. 다시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웬일로 전화 연결이 되었는데, 이 회사를 이미 퇴직했다는 사람의 번호였다. 이 회사는 시스템이 처절하게 엉망이구나, 실소가 나왔다. 다시 본사로 전화를 걸었고 이번에는 성별이 바뀌어 남자가 받았는데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의 말투였다. 전의 직원에 비해 말투가 퉁명스럽고 귀찮고 뻔뻔하게 느껴졌다. 다시 새로운 번호를 건네 받았고.. 드디어 품질 관리 부서의 제대로 된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행히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었고, 일말의 정중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톤을 가지고 있었다. 전기 히터가 갑자기 폭발해서 파편이 산산조각 났다고 사건 경위를 얘기하고, 소비자상담 A/S는 전화를 도통받지 않고 회사 시스템이 엉망인 것 같다고 건의하고난 후 피해보상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봤고, 연신 죄송하다며 자기가 대신 사과드리겠다고 했다. 폭발한 제품을 보내달라고 원인을 찾아보고 다시 수리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봤더니 일주일은 잡아야한다고. 아직 날씨가 춥고 겨울 막바지인데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릴까. 그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보기엔 이게 꽤 큰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새제품을 보내서 교환을 해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그는 금방 납득이 되었는지 제품을 보내주겠다고 맞교환을 하자고 했다. 근데 새제품이 아니라 테스트 하고 있는 제품이나 반품받은 제품 중에 쓸만한 거를 보내준다고 했다. 말이 길어지길 원하지 않아 알겠다고 했다. 이렇게 어수룩하고 엉망진창인 회사가 전기 히터처럼 위험성이 따를 수 있는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새로 온 교환 제품이 또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마음 놓을 수도 없다.


전화를 끝내고 산산조각난 유리 파편들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치워야했고, 난방을 가동하지 못한채로 내담자를 받을 수는 없으니 예약 잡힌 상담을 다른 날로 변경하도록 안내했다. 바닥에 보이는 파편을 여러번 쓸어담아 쓰레기 봉투에 넣었고 봉투를 꽁꽁 묶어 내다버렸다.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같은 감정/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를 희망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사고 경위와 해당 회사와 제품을 밝히고, 서비스 불평 사항을 민원 신고했다. 상담소에 있기 점점 추워져서 일찍 문을 닫고 퇴근했다.


퇴근하면서 시간을 보니 17시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辛巳신사일에 15:30~19:30에 해당하는 丙申병신시와 丁酉정유시는 신사 일진상 공망 시간이다. 밑독이 깨진 항아리처럼 뭔가 새어나가서 제 용도를 다할 수 없는 시간. 말그대로 공치고 망한 시간이었다. 삼형살이 걸리니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해결해야하는 시간이었다. 깎고 조정하고 삭감하고 끼워맞추고 수술, 형벌을 가하고. 일진으로 직접 형살을 다시 한 번 겪으며 형살을 제대로 체험하고 실습했다. 형살은 정말 만만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밖에 백호의 폭발성, 공망 작용을 추가로 실습했다.


이 상담소에서의 작은 폭발 사고를 어떤 조짐,징조의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경각심도 들었다. 이곳 상담소 운영을 조만간 그만둘 것 같다. 그밖에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전화 상담 예약이 잡혀있었는데 뭔가 핀트가 맞지 않고 꼬이는 느낌에 그분의 문자를 보내는 느낌이 거칠어서 상담을 취소하고 환불해드렸었다. 그분의 팔자에도 백호 대살이 두 개가 있었다. 또 읽고 있던 책은 <노자와 융>이었는데 그 책에서 다루는 심리학자 칼 융은 무의식의 작용(촉매적 외면화 현상)으로 엉뚱한 시공간에서의 우연한 폭발 사고를 여러 번 겪은(만든) 적 있었다. 그런 것들의 연결 고리도 함께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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