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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Nov 12. 2019

20191112 癸丑日

乙亥月, 절기상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겨울스럽게 추워지고 있다. 아직 입김은 별로 나오지 않지만. 올해는 그래도 계절 분배가 극단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좋다. 여름도 지나치게 길지 않았고, 봄가을도 섭섭할 만큼 짧지는 않았다. 올 겨울은 얼마나 추울지 지켜봐야겠지만 여름이 그렇게 덥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도 엄청 춥지는 않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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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잠들기 전에 가장 본격적으로 하지만, 길을 걸을 때도 자주 명상 음악을 들으며 호흡에 신경을 쓴다. 상담을 할 때도 명상 음악을 조그맣게 틀어놓는다. 명상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나름의 감각이 머릿속에서부터 이마를 향해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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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면 꿈을 기록한다. 꿈을 적으면서 무의식의 신비로운 특징도 다시금 알아가고 있다. 예컨대 꿈속에서는 영상을 보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뭔가가 궁금해지면 다른 차원을 통해서 정답을 찾아가볼 수 있다. 몸이 없어도 닭강정을 맛볼 수 있다. 특정 인물이 한 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나 꿈에서 깨기 전에는 아예 바뀌었다는 사실을 의심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꿈에서는 시간과 공간, 감각과 인물이 모두 기묘하고 유연하게 뒤틀린다. 

꿈속의 등장인물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무의식이 얼마나 세심하고 다정한지 모른다. 정말 옛날의, 그것도 무심하게 지나친 인연이라도 무의식은 그들을 제 역할에 맞는 위치로 배정시켜서 그들의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해 등장시킨다. 어떨 때는 서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사람들을 엮기도 하지만, 그들은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다. 꿈속의 사람들을 바라보자면 무의식은 모든 인연을 지독히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꿈이 좀처럼 기억나지 않아서 답답했지만, 꿈을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자 꿈을 기억할 수 있었고(기억하게 해줬고), 실제로 직접 적기 시작하면 꿈의 전후 상황이나 디테일이 더 자세하게 기억나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달아나거나, 숨거나, 꼬리를 자르는 꿈들이 많기는 하다. 꿈을 기록한다는 것은 깨진 바구니로 목적성이 불분명한 물통을 향해 이상한 나라의 바닷물을 퍼옮기는 것과 같아서 부질없어 보이긴 하지만, 한 방울의 바닷물을 통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할 것이니 어쨌든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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