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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Mar 26. 2020

사주와 영혼백 (2)

사주팔자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

한 사람의 운명을 구성하는 세 가지 차원의 함수인 영혼백 중에서 혼에 대한 이치를 설명한 체계가 사주팔자 명리학이다. 운명을 보다 정교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에 대한 직관과 백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관상과 한의학, 풍수지리, 집안 배경 등을 통해 백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박청화 선생님의 저서 중에 사주풀 때, 내담자의 관상도 힐끔보는 것을 '컨닝'이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또한 인류와 역사, 사회 등 인문학적 이해도와 관점에 따라서도 백에 대한 파악 정도가 또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한 사람의 운명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넓게, 예리하게 바라보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영적인 요소도 직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주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직관력을 발휘하겠지만 그 수준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통력을 타고 나기도 하고, 종교, 철학, 명상 등을 통해 영성을 수련하고 마음 공부를 하면서 직관력을 갖추고, 키워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명리계의 전설, 제산 박도사님이 이러한 신기를 잘 발휘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 영혼백이 분절될 수 없고 유기적이라고 이야기했듯, 레벨이 높다면 혼의 이치와 백의 지식을 통해 영을 적확하게 직관하기도 할 것이다.


혼적인 요소는 태양계 차원의 기운으로 우주자연의 법칙을 이성과 논리로 파악하는 것이다. 백적인 요소는 지구 차원의 형이하학으로 현상 세계의 경험적 지식을 학습으로 알아가는 것이다. 영적인 요소는 우주 차원의 형이상학으로 영성의 신기로 직관하는 것이다. 운명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읽으려 한다면 이 세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조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그것을 모두 완벽하게 파악하여 운명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꿰뚫는 것은 신(神)의 영역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주팔자의 오용과 남용, 악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주로 읽어낼 수 있는 한계를 명확히 이해해야 하고, 자기 능력의 한계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주만으로 확정적인 단언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 오만한 일이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내담자에게 겁을 주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저주에 가까운 악담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구업(口業)을 저지르는 것이다. 신들린 무당이 아닌 이상, 사주상담자는 찍기 도사마냥 뭔갈 억지로 맞추려하기 보다는 내담자와의 적절한 질의응답을 통해 함께 협력하여 길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내담자의 태도 또한 '어디 한 번 맞춰봐' 식으로 팔짱끼고 지켜보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협조해줘야 사주 상담에서 얻어가는 것이 더욱 알차고 많아질 것이다.


격국/강약/조후 등의 용신을 절대적 기준으로 여겨 사주팔자 자체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길흉/선악/미추/유무를 섣불리 판단내리는 것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 용신은 인간의 욕심이 개입된 인위적 관법으로 사주팔자 바라보는 시야를 자칫 탁하고 협소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물론 현상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입장에서 '용신론'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여기기 보다 하나의 방편 정도로 활용해야 한다. 그것보다 용신 이전에 우주 자연의 본성과 법칙에 인간적 편견을 덧대지 않는 '간지론'을 우선적으로 수용해야할 것이다.


잘못 학습된 선입견으로는 사주-혼이 불안해 보여도 영과 백이 받쳐줘 잘나가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사주-혼이 유리해보여도 영과 백이 받쳐주지 않아 평범하거나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도 많다. 이는 유명인과 주변 사람들, 내담자 사주를 누적해서 수집, 분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사주가 안 맞네' 하고 공부를 접고 돌아서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음양합일(陰陽合一)이라는 음양의 통합적이고 유연한 운동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익히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그 전에 사주팔자를 지나치게 신비화하여 환상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과대 포장과 허위 광고가 문제였겠지만) 음양을 단순한 흑백 논리가 아니라 흑과 백 사이에 엄존하는 무한한 명암의 스펙트럼으로 인식해야 진리에 한결 가까워질 것이다.


운명을 사려깊게 읽으려는 자는 사주팔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그 특징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와 같은 특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단점과 유불리, 이해(利害)를 모두 포용해야 한다. 거기에 내담자의 현실 상황과 의지를 개입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과 변수를 열어둬, 균형을 맞추고 중용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 물론 그러한 방식을 내담자 성향에 따라 미적지근하고 답답하다고 불평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주상담을 답을 맞추느냐 틀리느냐의 일방적인 이분법적 OX퀴즈, 결정론적 예지(豫知)의 영역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최선의 답, 올바른 답을 찾아가자는 토론 가능한 서술형 문제, 영백의 요소와 자유의지가 개입된 반-미지(半-未知)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높은 차원의 상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반(半)을 붙인 이유는 알다시피 사주를 통해 큰 틀, 방향성, 경향성, 가능성, 잠재성 등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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