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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Apr 28. 2020

쓰레기 줍기


집근처에 흐르는 진관내천을 따라 일주일에 두어 번 산책한다. 사색을 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주변 풍경을 보거나 하면서 산책을 하는데 주변 풍경을 볼 때마다 한 번씩 쓰레기가 눈에 들어와 거슬렸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여기는 따로 담당을 맡은 환경미화원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언젠가 내가 직접 쓰레기를 주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이 결심은 '언젠가'라는 가정으로 만들어졌기에 바로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산책을 할 때마다 그와 같은 결심도 누적되면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고, 마트에서 쇼핑을 하던 날 집게와 방수화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마트에는 따로 그런 것들을 팔지 않아서 온라인 주문으로 집게, 방수화, 쓰레기봉투 묶음을 주문하여 배송받았다.


이제 준비 단계는 마무리 된 것이다. 하지만 준비 단계가 갖춰졌다고 해서 곧바로 실행하는 것은 또 아니다.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을 대면서 조금씩 미루면서, 어쩐지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한 번 더 정리정돈하고 청소도 좀 더 신경써서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자기 주변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오지랖으로 동네 산책길까지 신경을 쓰냐고 무의식이 스스로의 가증과 모순을 어이없고 우습게 여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 눈에 들어오는 집안 전체뿐 아니라 화장실에서부터 신경쓰지 않았던 집 구석까지 신경써서 정리와 청소를 마쳤고, 그제야 스스로 떳떳해졌는지 가볍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방수화를 신고, 집게와 봉투를 든 채 내천을 향해 다가갈 수 있었다.


산책길이라 꽤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주우려하는 나의 준비 태세가 왠지 낯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자명하게 알기에, 직접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자 그런 시선이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귀로는 즐겨 공부하는 유투브 채널 강의를 들으면서 내천에 있는 쓰레기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내천에 들어가 건져올렸고, 길 구석에 있는 담배 꽁초나 과자 봉지도 보이는대로 모두 봉투에 담았다. 평소와 달리 계속 멈칫하고 기웃거리니 산책 코스가 평소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산책하는 사람 중에 "좋은 일 하십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하면서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네시는 분을 세네 분 만나면서 뿌듯한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목표했던 지점까지 쓰레기를 주워담자 봉투는 어느새 꽉 차버렸고, 날카로운 쓰레기와 쌓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밑부분이 찢어져버렸다. 그래서 윗부분을 꽉 매듭짓고, 봉투를 뒤집어 다시 풀리는 일이 없도록 아랫 부분을 손으로 받친 채 돌아가야 했다.


쓰레기를 줍는 게 모두에게 이로운 이유를 쓰레기를 줍기 전에도 그렇고, 주우면서도 꽤 다양하게 생각했다. 첫번째로 내천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더 이상의 수질 오염을 막아 보다 맑은 물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범위의 생태계일 뿐이지만 그 효과는 의외로 광범위할지도 모른다. 둘째로 내천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깨끗해진 산책 코스를 보고 더 이상 나처럼 눈에 거슬려 불편해지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듯이 깨끗해진 산책 코스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넷째로 셋째와 비슷한 이유인데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동네 환경을 신경쓰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적어도 나와 마주친 사람들은 웬만해선 쓰레기를 버리려하는 마음을 사그라들드록 하고, 나아가 나와 같이 눈에 띄는 쓰레기가 있으면 줍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긴다면 최선일 것이다.


내천에는 다양한 쓰레기가 있었지만 그중 최악으로 처치가 곤란할 지경의 참사와 같은 쓰레기도 있었다. 추측컨대 누군가 내천을 바라보면서 앉아 소주를 여러 병 마셨고, 소주를 다 비울 때마다 내천을 향해 세게 던져서 그런지 유리병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세네 병의 소주로 보였다. 잘게 조각난 유리 조각까지 모두 주울 순 없었지만 어떻게든 크고 작은 조각들을 최대한 주워 올리면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했을까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젊은 악동 친구들이 호기롭게 술을 마시면서 철없이 유리병을 깨는 상상이 들었는데, 내천이 흐르는 소리를 찬찬히 오래 들으며 조각들을 건져내다 보니 어쩌면 매우 절망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어떤 연민의 감정이 들었고, 힘든 상황이 어떤 식으로든 잘 해결되(었)기를 빌어주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이런 처참한 꼴을 만들어놨건 그 사람이 지은 카르마를 조금이라도 정화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유리 조각들은 내천 속의 어떤 연약한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쓰레기 줍기 때 이 유리조각들을 보다 확실히 처리할 수 있도록 인터넷으로 코팅 장갑을 주문했다.


비록 동네의 작은 천에 있는 사소한 쓰레기를 주운 것지만 동시에 나는 내 우주의 일부를 청소한 것이고, 누군가의 영혼의 일부를 정화한 것이다.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쓰레기를 줍기 위한 준비 단계를 거쳐, 쓰레기를 직접 줍고, 쓰레기를 줍고 난 이후에 정서적으로든, 사색과 영감에 있어서든, 무의식적으로든 보이지 않는 보상을 충분히, 감사할 만큼 누리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시간과 에너지에 여유가 있다면 종종(이삼주에 한 번) 쓰레기를 주울 계획이고, 장담할 순 없지만 때가 되면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동참할 온라인 동지들과 각각 자기 동네(선호하는 산책 코스)의 쓰레기를 줍는 느슨한 모임을 결성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200428 쓰레기 줍기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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