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1.천명과 명리학

by 은한

그리스어 ‘μετά’에서 유래된 ‘메타(meta)’는 [①사이에, ②뒤에, ③넘어서]라는 의미입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뜻하는 ‘메타인지’도 여기서 나온 말이죠. 기존의 틀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 기존과 실존의 ‘사이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체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메타명리학』으로 지은 이유도 같습니다. 『메타명리학』은 기존 명리학이 가진 전제와 틀을 한 걸음 뒤에서 조망해서 그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잡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궁리한 책이기 때문이죠.


『메타명리학』은 명리학이 성립될 수 있었던 음양오행 사상, 천간·지지 시스템을 상고시대의 관점으로 원뜻을 복원·재해석·접목하고자 했습니다. 음양오행 사상은 본래 개인의 운명을 구체적으로 논하기 이전에 마음과 우주의 원리를 전체적으로 알려주는 동방 고대문화의 정수였습니다. 기존 ‘명리命理’의 뜻이 ‘개체(에고)가 가진 목숨의 이치’에 한정됐다면 『메타명리학』은 거기에 더해 『중용』에서 말한 ‘하늘(하느님)이 명령한 본성’(天命之謂性)을 포함한 뜻으로 ‘명리命理’라는 단어를 형이상학적인 범위까지 확장하고자 합니다. 하늘의 뜻으로 새겨진 형이상의 질서(天命)가 인간(命)에게 반영되어 땅(運)에서 구현된다는 관점으로 말이죠.


사실 이러한 발상은 전통 명리학과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견해입니다. 전통 명리학의 철학적 토대는 후한 시대의 유물론적 사상가인 왕충(王充,27~104)의 ‘자연정명론(自然定命論)’에 기인합니다. 자연정명론은 인간의 명운은 태어난 처음에 부여받은 자연의 기로 인해 결정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주팔자가 형성되는 원천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왕충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본성과 명이 부귀를 담당하는 것은 처음에 받은 자연의 기”1)라고 말하죠. 첫 숨에 명(命)이 담겨있다는 왕충의 놀라운 통찰로 인해 사주팔자 명리학이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유물론자 왕충은 형이상의 의미를 지닌 초월적인 하늘(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히 형이하의 기운 차원에서만 하늘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왕충은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한다는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을 ‘허망하다(疾虛妄)’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비판합니다. 또 “하늘의 도는 자연적이고 길흉은 우연히 모인다”, “만물은 스스로 생겨나는데 모두가 원기를 받는다”2)라는 왕충의 말에서 미루어 보건대 그가 말하는 ‘하늘·도·자연’은 우주적인 질서(cosomos)의 정교한 작용이 아닌 무질서한 혼돈(chaos)의 우연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선진시대의 유가에서 말한 ‘천명(天命)’은 왕충에게 배척되었고, 전통 명리학의 토대는 우연이 지배하는 유물론, 목적과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길흉론에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유가는 물론 모든 고등 종교철학에서 핵심으로 여기는 하늘3)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 도통(道統)이 끊어진 채 명리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려 말의 선비 목은 이색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면 “하늘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도를 아는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늘의 본체는 ‘태극’(양심의 진리)에 근원하고, 만물에 흩어져서도 맥락이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니, 그 광명함이 위대하도다. 사람의 '텅 비어 있되 신령하고 밝게 알아차리는 의식'(허령불매虛靈不昧)이 비록 사방 1촌의 작은 공간에 있으나 하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 도를 아는 자가 아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목은문고牧隱文稿』)4)


명리학은 중국 특유의 현실을 중시하는 속세의 학문이 되었고, 그러면서도 결코 학문의 전당에 당당히 오르지 못하는 음지陰地의 학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명리학은 ‘60간지(干支)’의 부호 체계로 시간의 흐름, 변화, 순환을 말하며 이것을 근거로 개인의 운명을 판단합니다. 이것 자체가 하늘의 질서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수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하늘에 대한 경외보다는 알아서 그렇게 되는 우연에 기대고 있습니다. 하늘의 이치는 받아들이되 하늘의 존재는 수긍 혹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 것이죠.



<참고자료 및 각주>

1)人生性命當富貴者, 初稟自然之氣 (『논형論衡』), 루즈지 지음·김연재 옮김 『명리학의 이해-팔자명리학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사회평론, 2018 p.95 참조

2)“天道自然 吉凶偶會”, “萬物自生, 皆稟元氣” (『논형論衡』), 루즈지 지음·김연재 옮김 『명리학의 이해-팔자명리학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사회평론, 2018 p.92~3 참조

3)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유교의 ‘무극(無極)·태극(太極)·성(性)·양심(良心)·천제(天帝)’, 불교의 ‘참나·불성(佛性)·공(空)·법신(法身)·열반(涅槃)’, 도교의 ‘도(道)·무위(無爲)·자연(自然)’, 기독교의 ‘성부(聖父)·성령(聖靈)’, 힌두교의 ‘브라만·아트만’, 서양 철학의 ‘이데아·로고스·이성’과 유사한 뜻을 가집니다.

4)윤홍식 『도마복음, 예수의 숨겨진 가르침』 봉황동래 2021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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