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학문적 태도는 절대계의 근본원리(초월적 진리)를 다루는 철학보다는 현상계의 보편법칙(인과 공식)을 다루는 과학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상계는 나와 남을 분별하며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생각·감정·오감으로 원인과 결과가 드러나는 일반 세계를 말한다면, 절대계는 시공(時空)·주객(主客)·인과(因果)가 나누어지기 전의 모든 이원성을 초월한 영원불변하는 존재(순수의식·우주의식)를 말합니다.
과학적 태도만으로도 현상계에서 ‘개별구체적 사물’(경험·末)을 통해 ‘보편추상적 법칙’(개념·本)을 발견·정립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절대계의 ‘초월적 근본원리’(진리·大本)를 직관하지는 못하는 한 실상을 바라보는 안목에 한계와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현상계 자체만 인식해서는 현상계가 분열되고 관계 맺는 법칙밖에 알 수 없습니다. 절대계의 직관을 바탕으로 현상계를 인식해야 현상계의 존재 근거와 형성 원리, 운영 원리를 두루 깨닫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진리를 기반으로 선악에 대한 기준이 선명해져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실천하게 되죠.
윤홍식 대표님께서 ‘근본원리·보편법칙·개별사물’의 관계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하고 설명해주신 내용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옛날 복희씨가 천하의 왕 노릇을 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며 ‘형상’(象, 형이상의 근본원리)을 관찰했으며, 땅을 굽어보며 ‘법칙’(法, 형이하의 보편법칙)을 관찰하였다. (『주역』「계사전繫辭傳」)
천하 만물의 ‘소당연所當然’(보편법칙)은 ‘원리’(理)이며, ‘소이연所以然’(근본원리)은 원리의 ‘근원처’(태극太極)이다. (『주자어류』)
주자朱子는 개별·구체적 형상을 관통하는 ‘보편법칙’을 ‘소당연所當然’(마땅히 그렇게 작용하게 하는 인과법칙)이라고 부르고, “시간·공간 속에서 쉬지 않고 작용한다!”(不容已)라고 하였다. 『중용』에서는 이 보편법칙을 이원성 안에서 드러나는 ‘달도達道’(언제 어디서나 두루 통하는 logos)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법칙의 근본이 되는 ‘근본원리’를 ‘소이연所以然’(보편법칙의 원인이 되는 근본원리)이라고 부르고, “시간·공간을 초월하여 바뀌지 않는다!”(不可易)라고 하였다. 『중용』에서는 근본원리를 이원성을 초월한 ‘대본大本’(천지만물의 큰 뿌리가 되는 logos)이라고 부른다.1)
모든 개별사물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을 연구하여 그 본질과 말단을 꿰뚫어 보아 지혜를 이루는 것)가 이루어지게 되면, 말단(末)에 해당하는 ‘개별사물’에 대한 탐구에서, 개별사물의 본질(本)에 해당하는 ‘보편법칙’(시공 안에 구현되는 인의예지의 실천 법칙)을 탐구할 수 있으며, 보편법칙의 본질(大本)에 해당하는 ‘근본원리’(시공을 초월한 인의예지의 근본 실상)를 직관할 수 있다. 우리가 ‘본성’(인의예지의 근본원리)을 정확히 알 때, 인간의 모든 선善의 가능성과 악惡의 가능성을 직시하게 되고 바른 처방이 가능해진다. 인간 본래의 선善한 본성을 직시할 때, 모든 악惡은 뿌리가 뽑히게 되어 결국 ‘성스러운 인간’(聖人)이 될 수 있다.2)
인간의 운명이라는 넓고 추상적인 영역을 다루는 명리학은 운명의 형식으로서 대략적인 경향성과 추측의 단서를 제공할지언정 과학처럼 같은 조건이라면 늘 참으로 증명되는 엄밀한 인과 공식을 도출하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절대계의 직관을 도와주는 철학적 이론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선악의 기준이 불분명하여 도리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정보로 오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명리학은 과학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철학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학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음양학(陰陽學)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역(周易)』은 주역보다 후대에 성립된 명리학과는 전혀 다른 선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경(易經)은 복희가 팔괘를 그리고, 문왕이 괘사를 달고, 주공이 효사를 달고, 공자가 주석을 달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해오는 유가의 대표적인 경전입니다. 주역은 유가의 불세출한 성인(聖人)들과 그 제자들이 장기간 공동 작업으로 확립한 학문이라고 볼 수 있죠. 『주역』의 십익 중 「설괘전」과 「계사전」3)을 보면 하늘에 대한 공경, 하늘과의 친밀함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옛날 성인께서 역易을 만드실 때 은밀히 신명神明을 도와서 ‘시초’를 만들었다. (…) ‘도덕’에 조화를 이루며 순응하여 ‘정의’에 따라 다스렸고, 사물의 ‘원리’(理)를 궁구하고 사람의 ‘본성’(性)을 모두 발휘하여, 하느님의 ‘명령’(命)에 도달하였다.
昔者聖人之作易也 幽贊於神明而生蓍 (…) 和順於道德理於義 窮理盡性 以至於命 (『주역』 「설괘전」 제1장)
옛적 성인이 ‘역易’을 지은 것은 장차 ‘성명性命’의 원리에 순응하고자 함이다.
昔者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 (『주역』 「설괘전」 제2장)
‘천명’을 알고 즐기니 근심하지 않는다.
樂天知命 故不憂 (『주역』 「계사상전」 제4장)
‘천지’가 자리를 베풀면, ‘역’이 그 가운데에서 행해진다. ‘본성’(性)을 이루고 보존하고 보존하는 것이 ‘도의道義’의 문이다.
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 (『주역』 「계사상전」 제7장)
(시초는) ‘도道’(불변의 형상, 象)를 (괘로) 드러내고, ‘덕행德行’을 신령하게 하니, 이 때문에 더불어 수작할 수 있으며, 더불어 하느님을 도울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변화의 도를 아는 자는 하느님께서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顯道 神德行 是故 可與酬酢 可與祐神矣 子曰 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乎 (『주역』 「계사상전」 제9장)
역易은 생각함도 없고 하는 것도 없으며,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홀연히) 천하의 연고에 느끼어서 통하게 된다. 천하의 지극한 ‘신’(神, 하느님)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리오.
易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주역』 「계사상전」 제10장)
주역은 ‘성스러울 성聖’자의 뜻처럼 뛰어난 영성 지능으로(壬) 하늘의 뜻을 잘 알아듣고(耳) 말로 잘 전해주는(口) 성인을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하늘에 대한 형이상의 철학과 공경심이 밑바탕에 깔려있기에 유가의 경전으로 존숭받으며 불후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역에서 전해오는 가르침은 도통이 끊어진 기존 명리학의 문제점과 한계를 짚어주고, 명리학이 개선해나가야 할 처방전을 제시해 줍니다.
<참고자료>
1)윤홍식 『대학, 인간의 길을 열다』 봉황동래 2017 p.130
2)윤홍식 『대학, 인간의 길을 열다』 봉황동래 2017 p.30
3)윤홍식 『주역周易,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길잡이 계사전·설괘전』 홍익학당 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