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이 발전한 역사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음양오행 사상이 유행한 한(漢)대보다 훨씬 전인 황제(黃帝) 시대에 이미 명리학의 부호 체계인 간지(干支)가 먼저 만들어졌다고 전해오는 점이죠. 간지의 기원에 관해서 여러 신화가 전해져오는데 그중 명리학의 가장 근간이 되는 『연해자평』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황제 헌원씨가 치우와의 전쟁에서 고전하다가 난을 다스리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천신天神에 제사 지내니 하늘에서 십간과 십이지를 내려주셨다. 황제는 십간을 원으로 펼쳐 하늘 모양을 본뜨고, 십이지를 방으로 펼쳐 땅의 모양을 본뜨니 이로써 간干은 천天이 되었고 지支는 지地가 되었다.1)
간지의 기원에서도 황제와 하늘의 소통이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황제는 영성이 밝은 성인이었기에 하늘의 질서(근본원리)를 발견하여 간지라는 형태의 지상의 문자(보편법칙)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황제가 간지를 본뜨는 모습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진법으로 순환하는 천간(10)은 태양日과 연관되어 둥그런 하늘 모양으로 본뜨고(양陽:하늘·태양·낮), 지지(12)는 달月의 순환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실질적인 사시 순환과 사방위를 나타내기에 네모난 땅 모양으로 본뜬 것입니다(음陰:땅·달·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 圓方角, 청동거울·청동방울·청동검)를 가지고 사람들을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황제가 간지를 펼쳐서 보여준 천원지방 사상의 근저에는 환웅의 원방각 삼재 사상이 스며있습니다. 천간(○)은 음양(2)·오행(5), 지지(□)는 삼재(3,△)·사상(4,□)이 결합하여 형성되는 것이죠.
음양과 오행이 전국시대에 결합했다는 설이 있지만, 간지는 ‘음양·오행’과 ‘삼재·사상’ 철학 없이는 사실상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체계입니다. 곱셈을 모르면서 미적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간지가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음양오행 사상이 결합했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오행대의』에서는 “황제의 신하 대요씨가 오행의 정수를 뽑아 북두성의 기틀을 세우는 기준을 정한 것”이라 하며, 『삼명통회』에서는 “황제가 대요에게 오행의 정을 연구하도록 명하매 천서삼식을 연구하여 십간·십이지로써 육십이 되게 했다”고 전합니다.2)
역학의 원리상 삼재·사상·오행은 모두 태극과 음양 사상이 응용·심화·발달한 개념으로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해서 결합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원래 결합한 채 동시에 발달한 개념인데 어떠한 연유로 인해 후대로 제대로 전수되지 못하고 흩어졌다가 재결합했다면 모르겠지만요. 음양오행이 전국시대에 최초로 결합했다기보다는 상고시대에 홍산문화를 일궈낸 고조선의 지혜를 재발견하고 복원해낸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홍식 대표님의 스승님이시자 대종교 총전교를 역임하시기도 한 봉우 권태훈(1900~1994)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대황조(환웅)께서 우리 인류를 만물의 영장답게 여러 가지로 교화하시고, 처음으로 국가를 구성하고 군장(君長:임금)이 되셨다. 교화를 받은 사람 중에 가장 특수한 인물들을 사방으로 봉(封:다스릴 땅을 주어 보냄)하시어 민족을 교화하신 것이 중국에서 말하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로 대칭(代稱)된 우리 역대 단군들일 것”이라고 합니다.3)
윤홍식 대표님의 저서에서도 이에 대한 설득력을 더해 주십니다. “중국 도교의 유명한 경전인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는 “옛날 황제皇帝가 동쪽으로 청구靑丘 땅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紫府 선생을 만나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중국 도가의 시조인 황제가 우리 고조선 청구 땅에 와서 정신수련법과 학술을 배워 갔다는 것입니다.”4) 여기에서 말하는 ‘삼황내문三皇內文’은 천부인(원방각) 삼재 사상과 관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윤홍식 대표님의 말씀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중국은 동방 고대문화의 근원을 과거 고조선이 있던 지역에 위치한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 찾습니다. 이 홍산문화는 기원전 4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로서, 중국 문화의 원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화의 주체가 바로 ‘동이東夷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재 중국 학계에서는 고조선이나 은殷나라 등의 동이족 국가는 모두 이 홍산문화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 동방 고대문화의 전승이 황제에서 시작하여 요임금과 순임금을 거쳐 은나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5)
원시적인 오행설은 은나라의 오방(五方) 관념에서 발견되며, 간지의 역사적 유물도 은나라에 출처를 두고 있습니다. 1899년 이후 발굴된 은나라의 유물 갑골문 연구를 통해 은대의 모든 왕명에 천간이 포함되고, 동시에 은대에는 육십갑자 간지를 역일(曆日)로 사용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간지를 왕명에 사용했다는 건 그만큼 천간을 신성시했던 것이며, 동시에 역일로 사용했다는 건 간지가 일상적으로도 친근한 개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은나라 동이족에게 간지는 신성하면서도(天) 친근한(地), 그야말로 음양과 같은 개념으로 그에 대한 애정과 연구가 깊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실증이 앞으로 더 밝혀져야겠지만, 상고시대의 환웅과 황제 사이의 지리적·사상적 연관성을 생각해봅니다. 황제는 환웅의 천부인(원방각) 삼재 사상을 비롯해 동방 고대문화의 정수가 담긴 『서경(書經)』의 「홍범洪範」을 전수받아 음양·오행, 삼재·사상 철학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황제는 이 아이디어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익히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치밀하게 궁리하여 무르익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황제는 하늘로부터 십간, 십이지에 대한 영감을 얻어 하늘이 보여준 한층 정교한 질서를 땅에서 문자의 형태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죠.
<참고자료>
1)김기승·이상천 『음양오행론의 역사와 원리』다산글방, 2017 p.267
2)김기승·이상천 『음양오행론의 역사와 원리』다산글방, p.268~9 참조
3)“봉우사상을 찾아서(288) - 대황조(大皇祖:큰할배) 봉안(奉安)에 대한 사견(私見) <봉우일기4-114>”, 봉우사상연구소, 2021년 4월 12일 수정, 2021년 8월 24일 접속, http://www.bongwoo.org/xe/13163
4)윤홍식 『윤홍식의 용호비결 강의』봉황동래 2020 p.9
5)윤홍식 『중용, 양심경영의 지혜』봉황동래 2017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