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4.현대 명리학의 위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

by 은한

현대의 명리학 이론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랬다면 진작에 사주팔자의 명맥이 끊겼겠지만, 음지에서 전통을 이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술시장의 규모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단순히 운명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불안이 역술시장이 활성화되도록 부추긴 것도 있겠지만, 분명 명리 이론이 어느 일면에서 신통하게 들어맞는 면이 있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겠죠. 사주팔자 명리학이 한국인의 전반적인 정신과 감정에 은연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운명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고 유물론·음양론·길흉론에 입각한 기존 명리학 이론의 특성상 사주팔자를 대하는 대다수 상담자와 내담자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있다는 숙명론적 태도로 접근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내담자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길흉에 치우치도록 부추기는 꼴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태도는 명리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예언이 길하면 욕망을 자극하고, 예언이 흉하면 불안을 조장해서 문제가 됩니다. 예언이 맞으면 당연히 맞을 게 맞아서 의미 없고, 예언이 틀리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거짓말을 들은 것이니 문제가 되죠.


길흉론이 ‘운명을 알려준다’라며 수직적으로 일방 통보한다면, 『메타명리학』이 앞으로 주장할 ‘유심론·중심론·양심론’은 쌍방향 소통을 통해 ‘운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경영한다’라는 주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길흉론이 예정된 운명에 마냥 끌려다니게 한다면, 중심론은 운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운명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개성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심론에서도 운명의 큰 흐름과 경향성은 대략 정해져 있다고 인정하지만, 길흉론과 달리 구체적인 내용과 수준은 사주만으로 결코 알 수 없으며, 주인 정신으로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인정합니다.


불교에는 ‘단박에 깨닫고, 점차적으로 수행하라!’라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수행 체계를 말합니다. 『메타명리학』은 이 말을 변형해 ‘명을 깨닫고, 운을 닦아가라!’라는 명오운수(命悟運修)를 주장하겠습니다. 하늘이 명령한 인류 공통의 ‘본성(天命)’과 나만이 가진 ‘개성(命)’을 두루 잘 파악해서 내가 맞닥뜨리는 ‘세계(運)’를 나다운 방식으로 아름답게 꾸려가자는 것입니다. 인생은 다름 아닌 영적 성장의 과정이고, 카르마는 영적 성장의 재료이자 동력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부디 사주팔자를 접하는 모든 사람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 진정한 나를 깨닫고, 그곳에서 양심의 자유의지라는 열쇠를 찾아내서 숙명이라는 원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사주팔자 상담자는 음양의 결을 꿰뚫어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인도해주고, 내담자는 중심을 잡아 운명을 경영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개운법(開運法, 좋은 운을 열어가는 방법)’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한국의 역술시장이 운명에 대한 올바른 접근으로 한국인의 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아가 세계의 역술시장과 인류 의식으로 선한 영향이 뻗쳐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명리학은 물론 음양오행 사상을 비롯한 동방 고대문화의 정수가 지구상에 다시 한번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서문 3.고조선 철학의 복원과 접목